인연의 도리
(석용산 스님)
인연에 대해 이야기를 조금 하고자 합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든 생활사가,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 작복의 일일진데, 인연의 도리를 한 번쯤 음미해 보는 것도 삶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흔히들 옷깃만 스쳐도 전생의 인연이라고 하는 말을 쓰지요. 인연의 도리를 참으로 쉽게 표현한 말입니다. 불가에서는 옷깃 스치는 인연을 삼생의 인연이라 하고, 입 섞어 말하는 인연을 수생의 인연, 한 지붕 밑에 거하는 인연을 수십생의 인연이라 하며, 부모. 형제. 부부.사제의 인연을 수백 생의 인연이라 이야기하고 있지요. 한 번 만나기도 어려운데 수백 생을 만나고 또 만나, 그 인연들이 깊게 성숙되면서, 금생에 부부되고 형제된다는 말이 되겠지요. 그런데 이 만남의 인연이 좋은 인연만이 아니거든요.
아픈 인연에서부터 빚진 인연들까지, 얽히고설킨 인연들이기에 금생에 와서도, 그 인연의 타래들을 잘 풀지 못하여,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며 질투하게 되는 것이지요. 주어야 할 인연이라면 주고, 갚아야 할 인연이라면 갚는다는, 참으로 평범한 인연의 도리를 알 수 있다면, 사랑과 미움의 타래들이 잘 풀어질 수 있을 터인데.....
모르기에 어둡기에 미움과 저주, 시기와 질투로 괴로워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번에는「불심천자」라 일컬었던 중국의 황제, 양무제의 전생과 금생에 얽힌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양무제는 초기에 많은 불사와 선정을 베풀어서 치적을 쌓았는데, 말년에는 실정을 하여 가장 아끼고 믿던 신하의 손에 의해 바위 굴 속에 갇히게 되지요. 처음엔 저주와 욕설로 시간을 보냈지만 불심천자라 일컬어졌던 그였기에 신심이 돈발하여 바위굴을 법당삼아 공부를 하게 되었고, 결국 활연대오, 깨치게 되어서 시 한 수를 남기게 되었지요.
여기 바위굴에 갇힌
이 몸의 전신은 포수요
나를 가둔 나의 신하는
전생 바위 굴에,
내가 가두어 죽인 원숭이였네
인연따라 주고받는 응보
누굴 원망하고
무엇을 슬퍼하리요.
아들들에게도 원수 갚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지요.좀더 상술한다면, 전생에 양무제가 포수였을 때, 산 위에 올라가 바위굴을 발견하고, 바위 굴 속에 부처님 한 분도 발견하게 되었지요. 산에 오를 적마다 꽃을 불전에 올리면서 살생하는 포수가 싫으니, 다음 생에는 세상을 다스리는 황제가 되게 해 달라고 기원을 하곤 했지요. 어느 날 또 가보니 부처님은 거룩한 모습 그대로인데, 공양 올린 꽃이 손에서 떨어져 있고 대신 과일이 올려 있는 것을 보게 되었지요. 이상하다 생각하며 다시 과일을 내리고 꽃을 올리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다음에 올라가 보니 역시 꽃은 버려져 있고 다른 과일이 올라가 있는 것을 보게 되자, 슬며시 화가 난 포수는 굴을 지키게 되었답니다. 얼마 후 원숭이 한 마리가 나타나 꽃을 버리고, 과일을 올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지요. 포수는 앞뒤 생각없이 굴문을 돌로 막아버리고 내려와 버렸지요.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얼마를 지났는데, 꿈속에 원숭이 울음소리를 듣게 되고 지난 일이 생각나서 가 보았더니, 이미 원숭이는 굶어 죽고 말았지요.
비록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포수가 꽃을 올리며 기원하는 모습을 뒤에서 보게 되고 자기도 역시 과일을 올리면서 저런 사람으로 태어나서 저런 사람과 함께 거룩한 일을 할 수가 있게 되었으면,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 공덕으로 포수와 원숭이는 황제와 신하라는 인연으로 금생에 태어났고, 서로 얽힌 인과응보로 포수였던 황제는 원숭이였던 신하에게 굴 속에 갇히게 된 것이지요.
전생과 금생 그리고 내생을 훤히 볼 수 있는 혜안은 갖추지 못할망정, 이 인연의 평범한 도리를 알 수 있다면, 빼앗긴다는 생각, 당한다는 생각없이 참으로 소중한 인연의 사랑을 나늘 수 있지 않을까요? 이 평범한 인연의 도리를 믿을 수 있다면, 길가에 떨고 있는 이웃이 전생의 내 부모였음도 믿을 수 있을 것이고, 나를 괴롭히는 이웃이 전생의 내 형제였음을, 그리고 나와 부딪치는 모든 사람들이 수 생을 이어 오며 부모되고 형제되는 인연을 맺어 온 것도 알게 되지 않을까요? 이런 믿음이 생길 때, 우주의 삼라만상이 하나도 나와 무관한 것이 없다는 도리를 알게 되겠지요.
우리 다함께 이 인연의 도리를, 한 번쯤 생각하면서 살아 갈 수 있다면, 좀더 나은 내일들이 되지 않을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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