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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부동(不動) 청신녀
(第九善法行善知識)
선재동자는 묘광성에서 나와 길을 따라 가면서 일념으로 대광왕의 가르침을 생각하고, 보살의 대자당행문(大慈幢行門)을 기억하며, 보살의 세간을 수순하는 삼매의 광명문을 생각하였다. 그 불가사의한 서원과 복덕과 자재력(自在力)을 키우며, 중생을 성숙시키는 그 불가사의한 지혜를 견고히 하며, 함께 수용(受用)하지 않는 불가사의한 큰 위덕을 관찰하며, 불가사의한 차별상을 기억하며, 불가사의한 청정한 권속을 생각하였다. 그 불가사의한 소작업(所作業)을 생각하고는 환희심을 내고, 맑은 신심을 내고, 맹리심(猛利心)을 내고, 즐기는 마음을 내고, 뛰노는 마음을 내고, 다행히 여기는 마음을 내고, 흐림이 없는 마음을 내고, 청정한 마음을 내고, 견고한 마음을 내고, 광대한 마음을 내고, 다함이 없는 마음을 내었다.
이와 같이 생각하고 슬피 울면서, 선지식은 진실로 희귀하여 모든 공덕의 처소를 내며, 모든 보살행을 내며, 모든 보살의 깨끗한 생각을 내며, 모든 다라니륜(陀羅尼輪)을 내며, 모든 삼매의 광명을 내며, 모든 부처님의 법비를 두루 내리며, 모든 보살의 서원문(誓願門)을 나타내 보이며, 헤아리기 어려운 지혜의 광명을 내며, 모든 보살의 뿌리와 싹을 키운다고 생각하였다.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선지식은 모든 악도를 널리 구호하고, 평등한 법을 두루 말하고, 평탄하고 험난한 길을 널리 보이고, 대승의 심오한 이치를 널리 연다. 보현의 모든 행을 널리 권하여 닦게 하고, 일체지의 성에 인도하여 이르게 하고, 법계의 큰 바다에 두루 들어가게 하고, 삼세의 법바다를 널리 보게 하고, 여러 성인의 도량을 널리 주고, 모든 백법(白法)을 널리 자라게 한다.
선재동자가 이와 같이 슬픔에 잠겨 생각할 때 항상 따라 다니며 보살을 깨우쳐 주는 여래의 심부름꾼인 천신이 공중에서 말하였다.
"선남자여, 선지식의 가르침대로 수행하면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다 환희하며, 선지식의 말을 수순하면 곧 일체지의 경지에 가까와지며, 선지식의 말에 의혹이 없으면 모든 선지식을 항상 만날 것이며, 발심하여 항상 선지식을 떠나지 않으려고 하면 모든 이치를 두루 갖추게 될 것이다. 그대는 어서 안주(安住)의 서울로 가라. 부동 청신녀 큰 선지식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때 선재동자는 그 삼매의 지혜 광명에서 일어나 길을 재촉하다가 안주성에 이르러 부동 청신녀를 두루 찾아 다녔다. 여러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부동 청신녀는 처녀인데 집에 있으면서 부모의 보호아래 여러 친척들에게 미묘한 법을 말합니다."
선재동자는 이 말을 듣고 마치 부모를 만난듯 기뻐하며 그 길로 부동 청신녀의 집으로 갔다. 그 집에서는 금빛 광명이 두루 비치는데, 그 광명을 받는 사람은 몸과 생각이 시원해졌다.
선재동자는 광명이 몸에 닿자 곧 오백 가지 삼매의 문을 얻었다. 이른바 모든 희유한 모양을 아는 삼매문, 고요에 드는 삼매문, 모든 세간을 멀리 떠나는 삼매문, 넓은 눈으로 모두 버리는 삼매문, 여래장 삼매문 등이다. 이 삼매문을 얻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부드럽기가 이레 된 태와 같았으며, 미묘한 향기를 맡으니 하늘. 용. 건달바 등 인(人). 비인(非人)의 것이 아니었다.
선재동자는 그의 처소에 나아가 공경 합장 일심으로 살펴보았다. 그 모습은 단정하고 뛰어나 시방세계의 모든 여인으로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입에서 나는 미묘한 향기와 궁전의 장엄과 그 권속들도 그와 견줄 수 없는데 하물며 그보다 지나갈 이가 있겠는가. 시방세계의 모든 중생들이 이 청신녀에게는 염착(染着)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며 잠깐 보기만 하여도 번뇌가 저절로 소멸되었다. 마치 대범천왕에게는 욕계(欲界)의 번뇌가 생기지 않듯이 이 청신녀를 보는 이의 번뇌도 그와 같으며, 이 여인을 보고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큰 지혜를 갖춘 이 말고는.
선재동자는 허리를 굽혀 합장하고 정념으로 관찰하였다. 이 여인의 몸은 자유자재하여 헤아릴 수 없으며, 빛깔과 얼굴 모습은 이 세상에서 그와 같을 이가 없고, 광명이 꿰뚫어 그를 가릴 것이 없고, 중생을 위해 널리 이롭게 하고, 몸에서는 항상 아름다운 향기가 풍기고, 공덕이 깊고 넓어 끝닿은 데를 알 수 없었다. 선재는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여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청정한 계율을 지키고
넓고 큰 인욕을 수행하며
정진하여 물러나지 않으니
광명이 세간에 두루 비치다.
선재동자는 게송을 읊고나서 말하였다.
"성자시여, 저는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했으나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도를 닦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듣건대 성자께서 잘 가르쳐 주신다 하오니 말씀해 주소서."
이때 부동 청신녀는 보살의 부드러운 말과 뜻에 맞는 말로 선재동자를 위로하며 말하였다.
"착하다, 선남자여. 그대가 위없는 보리심을 발했구나. 나는 보살의 꺽기 어려운 지혜장(智慧藏) 해탈문을 얻었다. 또 보살의 견고하게 받아지니는 수행의 문을 얻었고, 보살의 모든 법에 평등한 총지문(總持門)을 얻었고, 보살의 모든 법을 밝히는 변재문을 얻었고, 보살의 모든 법을 구하여 고달픔이 없는 삼매문을 얻었다."
선재동자가 말하였다.
"성자께서 얻은 보살의 꺽기 어려운 지혜장 해탈문과 내지 모든 법을 구하여 고달픔이 없는 삼매문은 그 경지가 어떻습니까."
청신녀가 말하였다.
"선남자여, 그것은 알기 어려우니라."
"성자께서는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저는 선지식으로 인해 잘 믿고 받아 지니고 통달하고, 나아가 관찰하고 닦아 익히고 순종하여 모든 분별을 떠나 구경 평등에 이르겠나이다."
청신녀가 말하였다.
"선남자여, 과거세에 이구겁(離垢劫)이 있었는데, 부처님의 이름은 수비(修臂)이고, 전수(電授)라고 하는 국왕이 한 딸을 두었으니 그가 곧 지금의 나다. 그때 음악 소리도 그친 밤중에 부모와 형제들은 모두 잠이 들었고 오백의 동녀들도 자고 있었다. 나는 자지 않고 누각 위에 올라가 별을 보고 있었는데, 허공 중에 계시는 그 부처님을 뵙게 되었다. 그 부처님은 보산왕(寶山王)과 같아 한량없는 하늘 용 등 팔부신장(八部神將)과 보살들이 에워싸고 있었으며, 부처님 몸에서는 큰 광명을 놓아 시방세계에 두루하여 장애됨이 없었다. 부처님 몸의 털구멍마다 미묘한 향기가 나왔는데, 그 향기를 맡자 나는 몸이 부드러워지고 마음에 환희가 일었다.
그때 나는 바로 누각에서 내려와 땅에 서서 열 손가락을 모아 부처님께 예배드렸었다. 부처님을 우러러 보았지만 정수리는 볼 수 없었으며, 좌우를 돌아보았지만 끝닿은 데를 알 수 없었다. 부처님의 거룩하신 모습을 생각했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었다. 부처님 세존께서는 어떤 업을 지었기에 이와 같이 훌륭한 몸을 받았을까. 상호가 원만하고 광명이 구족하며, 권속을 많이 두고 궁전이 장엄하며, 복덕과 지혜가 청정하고 다라니와 삼매가 불가사의하며, 신통이 자재하고 변재에 걸림이 없으실까.
그때 여래께서는 내 생각을 아시고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는 깨뜨릴 수 없는 마음을 내어 모든 번뇌를 없애라. 이길 수 없는 마음을 내어 모든 집착을 깨뜨리라. 물러가지 않는 마음을 내어 깊은 법문에 들어가라. 참고 견디는 마음을 내어 나쁜 중생을 구제하라. 미혹이 없는 마음을 내어 널리 모든 세상에 태어나라. 만족이 없는 마음을 내어 부처님 뵈려는 생각을 쉬지 말라.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을 내어 모든 여래의 법비를 받으라. 바르게 생각하는 마음을 내어 모든 불법의 광명을 내라. 대주지심(大住持心)을 발하여 모든 부처님의 법륜을 널리 굴리라. 넓게 유통하려는 마음을 내어 중생의 욕망을 따라 법보를 널리 배풀어라.'
선남자여, 나는 그 부처님 계신 데서 이와 같은 법을 듣고, 일체지를 구하고, 부처님의 열 가지 힘을 구하고, 부처님의 변재를 구하였다. 부처님의 광명을 구하고, 부처님의 육신을 구하고, 부처님의 상호를 구하고, 부처님의 모인 대중을 구하였다. 부처님의 국토를 구하고, 부처님의 위의를 구하고, 부처님의 수명을 구하였다. 이런 마음을 낼 때 그 마음이 금강과 같이 견고하여 그 어떤 번뇌로도 깨뜨릴 수 없었다.
내가 이런 마음을 낸 이래 염부제의 미진수겁을 지내도록 탐욕을 생각하는 마음을 낸 일이 없었는데 하물며 그런 일을 행했겠는가. 그런 겁 중에 내 친족에게도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았는데 하물며 다른 이에게이겠는가. 또 그런 겁 중에 나의 몸에도 '나'라는 소견을 내지 않았는데 하물며 물건을 가지고 내 것이란 생각을 내었겠는가. 그런 겁 중에 죽을 때, 태어날 때, 태에 있을 때에 미혹하여 중생이란 생각이나 기억이 없는 마음을 내지 않았는데 하물며 다른 때이겠는가. 그런 겁 중에 꿈속에서 뵈온 한 부처님도 잊지 않았는데 하물며 보살의 열 가지 눈으로 본 것이겠는가. 그런 겁 중에 받아 지닌 여러 부처님의 바른 법을 한 글자 한 귀절도 잊지 않았고, 세속의 말까지도 잊지 않았는데 하물며 부처님의 입으로 친히 말씀하신 것이겠는가. 그런 겁 중에 받아 지닌 모든 여래의 법바다에서 한 글자 한 귀절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없고 관찰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내지 세속의 법도 또한 그러했다. 그런 겁 중에 부처의 바다를 보고 한 부처님에게도 청정한 서원을 성취하지 못한 것이 없으며, 내지 여러 화신불에게서도 또한 그러하였느니라. 그런 겁 중에 여러 보살들이 미묘한 행을 닦는 것을 보고 한 가지 행도 내가 성취하지 못한 것이 없었다.
또 염부제의 미진수겁을 지내도록 내가 만난 중생들 가운데서 단 한 중생이라도 위없는 보리심을 발하도록 권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한 중생에게라도 성문(聲聞)이나 벽지불의 뜻을 발하도록 권한 일은 없었다. 그런 겁 중에 모든 부처님의 법에 대해서 한글자 한 귀절에도 의혹을 내지 않았고, 두 가지 생각을 내지 않았으며, 분별하는 생각, 갖가지 생각, 집착하는 생각, 우열을 가리는 생각, 좋아하고 싫어하는 생각을 내지 않았었다.
선남자여, 나는 그때부터 항상 부처님을 보고, 보살을 보고 진실한 선지식을 보았었다. 항상 부처님의 서원을 듣고, 보살의 행을 듣고, 보살의 바라밀문을 듣고, 보살지(菩薩地)의 지혜 광명문을 듣고, 보살의 무진장문을 들었다. 항상 끝없는 세계의 그물에 들어가는 문을 듣고, 끝없는 중생계를 내는 원인의 문을 들었다. 항상 청정한 지혜 광명으로 모든 중생의 번뇌를 없애고, 지혜로 모든 중생의 선근을 성장케 하고, 모든 중생의 좋아함을 따라 몸을 나타내고, 항상 청정하고 훌륭한 말로써 법계의 모든 중생들을 깨닫게 했다.
선남자여, 나는 보살이 모든 법을 구하여도 싫음이 없는 장엄문을 얻었고, 모든 법이 평등한 자리에 있는 총지문(總持門)을 얻어, 불가사의한 자재 신통변화를 나타내는 것을 보고 싶은가."
선재동자는 진심으로 보고 싶다고 했다. 그때 부동 청신녀는 용장(龍藏) 사자좌에 앉아, 모든 법을 구하여도 싫음이 없는 장엄 삼매문과 공하지 않는 장엄 삼매문과 열 가지 힘의 지혜 바퀴가 앞에 나타나는 삼매문과 불종(佛種) 무진장 삼매문에 들어갔으며, 이와 같이 일만 삼매문에 들어갔다.
부동 청신녀가 삼매에서 일어나 선재동자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다만 이 모든 법을 구하여도 싫음이 없는 삼매의 광명을 얻고, 모든 중생에게 미묘한 법을 말하여 기쁘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저 보살 마하살은 가루라(迦樓羅) 처럼 허공으로 다니면서 걸림없이 모든 중생 바다에 들어가 선근이 성숙한 중생을 보고는 곧 들어다가 보리의 기슭에 둔다. 또 상인들처럼 큰 보물섬에 들어가 여래의 열 가지 힘과 지혜의 보배를 구하며, 어부처럼 정법의 그물을 가지고 생사의 바다에 들어가 애욕의 물속에서 중생들을 건져내되, 마치 아수라왕이 삼계의 큰 성과 번뇌의 바다를 뒤흔들 듯이 한다.
또 해가 허공에 뜨듯이 애욕의 진흙에 비추어 마르게 하고, 보름달이 허공에 뜨듯이 교화받을 사람의 마음 꽃을 피게 하고, 대지가 두루 평탄하듯이 한량없는 중생들이 그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선한 법의 뿌리와 싹을 키우고, 큰 바람이 가는 길에 걸림없듯이 모든 나쁜 소견의 나무를 뽑아 버리고, 또 전륜왕처럼 세간에 다니면서 네가지 거두어주는 일[四攝事]로 중생을 거두는 일이야 내가 어떻게 알며 그 공덕의 행을 말할 수 있겠는가.
선남자여, 여기서 남쪽으로 가면 무량도살라(無量都薩羅)라는 성이 있는데, 거기 출가한 외도(外道)가 있으니 이름이 변행(偏行)이다. 그대는 그에게 가서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보살도를 닦느냐고 물으라."
선재동자는 그의 발에 예배드리고 무수히 돌고 우러르면서 하직하고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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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법(白法): 결백 청정한 법. 곧 선법(善法)을 말함.
※팔부신장(八部神將):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신장. 천. 용. 야차. 아수라. 가루라. 건달바. 긴나라. 마후라가.
※가루라(迦樓羅): 인도 신화에서 용을 잡아먹는다고 하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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