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성BORISUNG

『碧巖錄』(제27칙ㆍ雲門體露金風)

보리성2002-09-01 00:33조회 5No. 28
碧巖錄 (霧山 五鉉스님 譯解)

      운문의 앙상한 나무에 부는 가을 바람 垂示

  하나를 물으면 열 가지를 대답해 주고, 하나를 말하면 셋을 알아차리고, 토끼를 보면 매를 날리고, 바람을 생각해 불을 놓는 일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호랑이 굴에 들어갔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본칙을 살펴보라. 本則

한 납자가 운문 화상을 찾아와 물었다. "나뭇잎이 시들어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화상은 이렇게 답했다. "앙상한 몸을 드러내면 가을 바람만 가득하겠지."

頌

질문 속에 대답이 있고 대답 역시 그러하다. 삼구를 헤아린다면 화살은 구름 밖을 날리라. 너른 들녘엔 찬바람이 을씨년스럽고 하늘에선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소림에 오래 앉아 돌아가지 않는 길손이 웅이산 깊은 숲에 잠든 듯 귀 열고 있음을.

蛇足

  모든 존재는 살기 위해 존재한다. 죽기 위해 몸부림치는 존재는 없다. 소나무도 껍질을 벗겨내면 하얀 송진을 드러내며 아파한다. 흐르는 물도 막으면 돌아서라도 내려간다. 말 못하는 짐승도 위험을 느끼면 본능적으로 날고 뛰어서 도망간다. 그런데 하물며 사람이야 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심지어는 도둑놈이나 살인자도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물으면 '살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살기 위해서 한 짓이라면 그것은 크게 벌 줄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일은 어떻게 해야 참으로 잘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 높이 쌓고 많이 채워야 잘 산다고 믿어왔다. 그렇지만 쌓고 채우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것들을 언제까지 소유할 수도 없다. 채우려고 하면 할수록 갈증만 더해서 마침내는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채우고 쌓기보다는 비우고 버리는 일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참으로 편안해진다. 운문화상이 체로 금풍이라고 한 것은 이런 경지를 두고 한 말이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육체는 하나의 나무다. 가지가 자라고 나뭇잎이 무성하다. 인생은 이 나뭇잎을 무성하게 달고 사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그러나 옛속담에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했다. 가지가 많고 잎이 무성하면 할수록 걱정도 많고 번뇌도 많다. 잎이 떨어진다는 것은 이런 걱정과 번뇌가 다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이 질문은 '번뇌가 다 떨어져 나간 경지는 어떠한가?'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운문화상의 대답은 아주 시적이다. 잎이 다 떨어지면 '온몸은 앙상한 모습을 드러내고 천지에는 금풍(金風), 그러니까 서쪽에서 부는 가을 바람만 가득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알몸을 드러내고도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사람, 가을 바람이 불면 그 바람을 온 몸으로 맞아도 쓸쓸할 것이 없는 사람은 또 얼마나 멋진 사람인가.   가을 바람이 불어 낙엽을 지게 하는 설악산의 경치는 참으로 아름답다.

목록

보리성의 집 · borisung.com · 2001년 원본의 메뉴·게시판·사진을 그대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