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성BORISUNG

◆제 8장 단박 깨침과 점차 닦아...

보리성2001-11-07 10:01조회 0No. 26

   ◆제 8장 단박 깨침과 점차 닦아 깨침(頓漸品)  어느때 조사께서 조계 보림(寶林)에 계시고 신수대사는 형남(荊南) 옥천사에 계셨다. 그 때 두 종이 융성하니 사람들이 모두 '남에는 혜능, 북에는 신수' 라 하였다.  그러므로 남북의 두 종에 단박 깨침과 점차로 깨침의 갈라짐이 있게 되니, 배우는 이들이 종지의 돌아가는 바[宗趣]를 알지 못했다.  조사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법은 본래 한 종인데 사람에 남과 북이 있고, 법은 곧 한 가지 인데 견해에 더딤과 빠름이 있다.  무엇을 단박 깨침과 점차로 깨침이라 하는가. 법에는 본래 단박 깨침과 점차로 깨침이 없지만, 사람에 날카로움과 무딤이 있으므로 단박 깨침과 점차로 깨침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수의 무리들은 자주 남종(南宗) 조사를 헐뜯어서 '글 한자도 모르거니 무슨 대단한 점이 있겠는가' 라고 했다.  신수대사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분은 스승 없는 지혜를 얻고 깊이 최상승을 깨쳤으나 나는 그렇지 못하다. 또 나의 스승이신 오조께서 몸소 가사와 법을 전하셨으니 어찌 헛되이 그러했겠는가. 나는 멀리서 가 가까이 할 수 없어서 헛되이 나라의 은혜 받음을 한스러워 한다. 너희들 여러 사람은 여기서 머물러 있지 말고 조계에 가서 배워 의심을 끊도록 하라."  하루는 문인 지성에게 이렇게 명하였다.  "너는 총명하고 지혜가 많으니 나를 위해 조계에 가서 법을 들으라. 네가 만약 법을 들으면 마음을 다해 기억해 두었다가 나를 위해 말해주라."  지성이 명을 받고 조계에 이르러 대중을 따라 공부에 함께 하였는데, 온 곳을 말하지 않았다. 그 때 조사께서 대중에게 이르셨다.  "지금 법을 훔치러 온 사람이 이 모임에 숨어 있다."  지성이 곧 나와 절하고 그 일들을 갖춰 다 말씀드렸다.  조시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옥천에서 왔다니 반드시 염탐꾼이겠구나."  지성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왜 그렇지 않은가?"  지성이 대답했다.  "말씀드리지 않았을 때는 그렇다 할 수 있지만, 말씀드렸으니 그렇지 않습니다."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스승은 어떻게 대중에게 보이는가?"  지성이 대답했다.  "늘 대중에게 가르쳐 주시되 '마음을 머물러 고요함을 살피고 길이 앉아 눕지 말라'고 하십니다."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마음을 머물러 고요함을 살피는 것은 병이지 선이 아니다. 길이 앉아 몸만을 얽매는 것이 바른 이치에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나의 게를 들으라."
살아서는 앉아서 눕지 못하고 죽어서는 누워서 앉지 못하네. 한 덩어리 냄새 나는 뼈다귀로 깨침의 공 어찌 세울 수가 있으리.
 지성이 다시 절하고 말씀드렸다.  "제자가 신수대사 계신 곳에서 9년간 도를 배웠으나 계합해 깨치지 못했으나, 이제 화상의 한 말씀을 듣고 곧 본 마음[本心]에 계합하였습니다. 제자의 나고 죽음의 일이 크오니 화상께서는 큰 자비로써 다시 가르쳐 주십시요."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들으니 너의 스승이 배우는 이들에게 계. 정. 혜법을 가르친다는데, 너의 스승이 말하는 계. 정. 혜의 행하는 모습이 어떤지 알지 못하니 나에게 말해 보아라."  지성이 말씀드렸다.  "신수대사는 말씀하시기를 '모든 악 짓지 않는 것'을 계라 하고, '모든 선 받들어 행함'을 혜라 하며, '스스로 그 뜻 깨끗이 함'을 정이라 하십니다. 그 분의 말씀하시는 것은 이와 같은데 화상께서는 어떤 법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십니까?"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만약 어떤 법을 사람에게 줌이 있다고 말한다면 곧 너를 속임이 된다. 또한 다만 길[方]을 따라 얽힘을 푸는 것을 삼매라고 거짓 이름한 것이다. 너의 스승이 말씀한 계. 정. 혜도 실로 불가사의하지만 내가 보는 바 계. 정. 혜는 또 다르다."  지성이 말씀드렸다.  "계. 정. 혜는 다만 한 가지가 될 것인데. 어떻게 다시 다릅니까?"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스승의 계. 정. 혜는 대승의 사람을 제접하는 것이고, 나의 계. 정. 혜는 최상승의 사람을 제접하는 것이다.깨닫고 앎이 같지 않으므로 견해에 더디고 빠름이 있는 것이다. 내가 설하는 바가 그 스님과 같은가 다른가 들어보아라. 내가 설한 법은 자신의 참성품[自性]을 떠나지 않으니, 존재의 참모습[體]떠나 법을 설하는 것을 모습에 얽힌 설법[相說]이라 하니 자신의 생활이 늘 헤매게 된다. 반드시 모든 존재가 자신의 참성품[自性]을 좇아 작용 일으킴을 알아야 하니 이것이 참된 계. 정. 혜 법이다. 나의 게를 들으라."
마음 땅에 그릇됨이 없으면 참된 생활의 계요 마음 땅에 어리석음 없으면 참된 생활의 지혜며 마음 땅에 어지러움 없으면 참된 생활의 정이네. 늘지 않고 줄지 않음 스스로의 금강이요 몸이 가고 몸이 오는 것 본래의 삼매로다.
지성이 게를 듣고 깊이 뉘우쳐 다음의 한 게송을 지어 바쳤다..
오온으로 된 헛깨비 몸이여 헛깨비가 어찌 구경이리요. 그렇다고 진여를 따로 찾으면 법이 도리어 깨끗하지 않음 되리.
 조사께서 '그렇다' 하시고 다시 지성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스승의 계. 정. 혜는 작은 근기의 지혜를 지닌 사람을 권하는 법이요, 나의 계. 정. 혜는 큰 근기의 지혜를 가진 사람을 권하는 법이다.  만약 자신의 참성품을 깨달으면 보리 열반도 세우지 않고 또한 해탈지견도 세우지 않으니, 한 법도 가히 얻을 것이 없어야 바야흐로 만 가지 법을 건립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이 뜻을 알면 붓다의 몸[佛身]이라 이름하고, 또한 보리 열반이라 이름하며 해탈지견이라 이름한다.  성품을 본 사람은 세워도 되고 세우지 않아도 되니, 오고 감이 자유로워 막힘 없고 걸림 없어서 작용에 응하여 따라 짓고 물음에 응하여 따라 답하여, 널리 화신(化身)을 나투되 자신의 참성품 떠나지 않아서 곧 자재한 신통과 마음대로 노니는 삼매를 얻게 되니 이것이 참성품 봄[見性]이다."  지성이 다시 조사께 여쭈었다.  "무엇이 세우지 않는 뜻입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의 참성품은 그름이 없고 어리석음이 없으며 어지러움이 없으니, 생각 생각 반야로 살펴 비추어 늘 모습을 떠나면 자유자재하여 가로세로 그 어디서나 모두 얻으니 무엇을 가히 세울 것이 있겠는가. 자신의 참성품이 스스로 깨달아 단박 깨닫고 단박 닦아버리므로 또한 점차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온갖 법을 세우지 않으니 모든 법이 고요함에 무슨 차제가 있겠는가."  지성이 절하고 곁에서 모시기를 원하여 아침 저녁으로 게으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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