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혜능선사의 행적과 법 받은 연유[行由品]
1. 대범사에서 널리 설법하다[於大梵寺開堂普說]
[원문]
그때 대사가 보림에 이르니 소주 위자사(이름:거)가 관료와 함께 산에 들어와, 대사가 성 가운데 대범사 강당에 나와 대중을 위해 진리의 인연을 열어 법을 설하시도록 청하였다.
대사가 자리에 오르자 자사 관료 삼십여 명과 유가의 학자 삼십여 명, 남녀 승려와 일반 대중 천여 명이 함께 절하고 법요(法要)를 듣고자 하였다.
대사가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이여,
보리(菩提:bodhi)의 자기 모습 본래 깨끗하니
다만 이 마음을 쓰면 곧 깨달음을 이뤄 마치라."
* 해설 *
대범사(大梵寺)는 소주(韶州)에 있는 절이다. 혜능선사께서 광주(廣州) 법성사(法性寺:지금 중국 廣州 光孝寺)에서 인종법사를 만나 긴 은둔생활을 청산하고 출가한 뒤,법성사에 머무르고 계시다가 이제 조계의 보림에 돌아오니, 때가 의봉 2년(677) 대사 나이 40세였다.
소주 자사 위거의 청으로 소주 대범사 강당에서 계단(戒壇)을 열어 승속대중에게 반야바라밀의 법을 설하고, 삼귀의계와 모습없는 참회법을 전해줌에 선사의 법어를『단경(壇經)』이라 한다. 어록(語錄)에 해당되는 법문을 경(經)이라고 부르는 것은 선사의 법문이 여래 원돈교(圓頓敎)의 가르침을 그대로 전했기 때문이다.
덕이본『단경』에서는 법어를 시작하기전 '선지식들이여, 모두 마음을 깨끗이 하여 마하반야바라밀를 생각하라(善知識 總淨心 念摩訶般若波羅蜜)' 는 귀절이 들어 있는데, 본서가 채택하고 있는 종보본『단경』에서 이 귀절은 뒤의 반야품에 들어있다.
선지식은 중생을 가르쳐 깨달음의 길에[菩提之道]에 끌어들이는 스승을 뜻하는데, 혜능선사가 법 듣는 대중을 선지식이라고 부른 것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불법이란 법을 설하는 이[設法師]와 법을 듣는 이[聽法衆]가 함께 깨달음에 드는 크나큰 해탈의 길임을 나타낸다.
'보리의 자기 모습 본래 깨끗하니 다만 이 마음을 쓰면 곧 깨달음을 이루어 마침이다(菩提自性 本來淸淨 但用此心 直了成佛)' 라는 이 귀절은 돈황본에는 빠져있지만, 이 법문이야 말로『단경』이 보인 진리관의 핵심을 단적으로 요약해 보인 가르침이다.
불교의 깨달음은 초월적인 일자(一者)와 합일하는 것이거나 선정의 깊이를 심화시켜 보다 높은 정신세계로 발전해가는 것이 아니라, 중생의 번뇌와 생사가 인연으로 일어난 것이라 실로 있지 않음[緣起卽空]을 체달하여 머뭄 없는 묘한 행[無住妙行]을 바로 드러내 쓰는 데 있다.
그런데 여기서 '보리자성이 본래 깨끗하다(菩提自性 本來淸淨)' 든가 '참된 마음이 두루하지 않음이 없다(眞如自心 無所不遍)' 는 표현은 중생의 허위의식 너머에 변치 않는 자성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중생의 번뇌가 본래 공하다[煩惱本空]는 뜻이며, 중생의 망녕됨이 실로 일어난 바가 없다[妄念本無]는 뜻이다.
지금 중생이 쓰는 마음[六識]은 주체[六根]와 객체[六境]가 어울려 일어나니, 안에도 그 뿌리가 없고 밖에도 그 뿌리가 없지만 안과 밖을 떠나지도 않는다. 마음은 주체와 객체 속에서 일어나나, 마음일 때 자아는 마음인 자아이며 세계는 마음인 세계이니, 자아를 안의 마음[內心]이라 하고 세계를 밖의 마음[外心]이라 하며, 자아와 세계가 어울려 일어나는 식(識)을 중간의 마음[內外心]이라 한다. 그러므로 이 마음이 안에도 없고 밖에도 없고 중간에 일어난 모습도 없는 줄 알면 보리자성이 본래 깨끗함을 앎이며, 진제를 체달하여 모습에 얽매인 생각을 그침[體眞止]이다. 이처럼 지금 쓰는 이 마음이 안과 밖과 가운데에도 없어서 실로 남이 없으나, 안과 밖을 떠나지 않은 줄 알면 본래 깨끗한 마음을 바로 씀[但用此心]이며, 이것 저것에 머뭄없이 이것 저것을 굴려쓰는 묘한 행을 일으켜 냄[方便隨緣止]이다.
그렇다면 심성(心性) 또는 보리자성(菩提自性)은 중생의 망념 너머에 있는 절대의 성품이 아니라 망념의 머뭄 없는 자기실상이라 할 것이니, 혜능선사 이전 중국 초기선에서 심성(心性)이란 말이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삼론조사 가상길장이 예성(叡聖)으로 추앙한 바 있는 남악혜사선사(南嶽慧思禪師)는『제법무쟁삼매법문(諸法無諍三昧法門)』에서 마음이 나되 남이 없음을 심성(心性)이라 부르며, 그 심성이 본래 청정함[心性淸淨]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안의 마음 밖의 마음 중간의 마음
그 온갖 것 다 심왕과 심소법이네.
심성은 본래부터 청정하여서
이름과 모습의 자취 없으니
안과 밖에 있지 않고 중간 아니네.
생기거나 없어지지 아니하여서
마음은 언제나 고요하나니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고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아니하며
고요함과 어지러움 모두 아니며
생각하여 헤아리는 것도 아니네.
움직임도 아니고 머뭄 아니며
오는 것도 아니고 감도 아니며
죽고 삶도 아니고 열반 아니며
끊어짐도 항상함도 모두 아니며
얽매임도 아니고 풀림도 아니며
여래장과 범부 성인 모두 아니니
마음의 참모습 알지 못하면
그것을 범부라고 이름 부르며
마음의 참모습 사무쳐 알면
그가 바로 거룩한 성인이 되네.
.......
뒤바뀐 헛된 마음 문자 착하나
심성은 본래부터 청정하나니
밝은 구슬 여러 가지 빛깔에 의해
물들어 더럽히지 아니함 같네.
비유하면 깨끗한 저 여의주를
여러 가지 빛깔로 싸 물 속에 두면
구슬을 싼 물건의 빛깔을 따라
깨끗한 물 능히 변케 함과도 같네.
푸른 빛 물건으로 싸게될 때엔
물이 곧 푸르게 변하게 되고
누른빛 붉은 빛 희고 검은 빛
물건으로 여의주를 싸게될 때엔
싼 빛 따라 물빛 또한 바꿔지지만
구슬 빛깔 고요하여 변치 않나니
심성의 청정함도 구슬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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