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성BORISUNG

☆해설14/2.모습 없는 노래로써 ...

보리성2002-03-18 15:12조회 3No. 47
2.모습 없는 노래로써 돈교를 거듭 말함[以無相頌重說頓敎] 바로 돈교의 모습 없는 노래를 보임[卽說頓敎無相偈頌]

[원문]   선지식이여, 나에게 한 모습 없는 노래[無相頌]가 있으니 각기 반드시 외워 집에 있든 출가하든 다만 여기에 의지해 수행하라. 만약 스스로 수행하지 않고 오직 나의 말만 기억하면 이익됨이 없을 것이다. 나의 노래를 들으라."

설법과 참된 마음 함께 통하니 해가 저 허공에 있음과 같네. 오직 견성하는 법만 전달하나니 세간 뛰쳐 삿된 종지 깨뜨리도다. 법에는 담박과 점차의 차별 없지만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깨달음에 더딤과 빠름의 차별 있나니 다만 이 견성하는 진리의 문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알 수 없어라. 말하면 비록 만 가지가 벌어지나 모습 없는 이치에 합하고 보면 만 가지가 하나에 돌아가나니 번뇌의 어두운 집 가운데에 늘 지혜의 해 빛나게 하라. 삿됨이 오면 번뇌가 따라 이르고 바름이 오면 번뇌가 없어지나니 삿되고 바름 함께 쓰지 않으면 깨끗하여 남음 없는 열반 이르리. 항상 밝은 보리의 본래 자성에 생각을 일으키면 허망함 되나 깨끗한 마음 망념 속에 있으니 다만 바르면 세 가지 장애 없으리. 세상 사람들 만약 도를 닦으면 온갖 것이 다 방해롭지 않을 것이니 늘 스스로 자신의 허물만 보면 바른 도와 언제나 서로 맞으리. 빛깔 있고 모습 있는 여러 무리에 스스로 바른 삶의 길이 있어서 서로 괴롭혀 방해하지 않나니 자기 길을 떠나 따로 길을 찾으면 이 몸이 다하도록 참 길 못보리. 물결처럼 흔들려 한 생 보내면 끝내 되려 스스로 뉘우치리니 참된 삶의 길 보려 한다면 바름을 행하는 것 바로 길이니 스스로 바른 도의 마음 없으면 어둠 속에 헤매어 길을 못 보리. 참으로 바른 길 닦는 이라면 세간의 그름만을 보지 말지니 다른 이의 그름만을 보게 된다면 스스로 그르다 함이 잘못이 되니 남 그르고 나는 그르지 않다 하면 내가 남을 그르게 여기는 마음 도리어 스스로의 허물이 되네. 다만 그르게 여기는 마음 버리고 번뇌를 쳐 깨뜨려 없애 버리며 미움 사랑 마음에 걸리지 않으면 길이 두 발 펴고서 편히 누우리. 다른 사람 교화하려 생각한다면 반드시 좋은 방편 있어야 하니 저들이 의심 두지 않게 한다면 곧바로 자기 성품 드러나리라. 불법은 바로 세간 속에 있으니 이 세간을 떠나지 않고 깨치라. 세간을 떠나 따로 보리 찾으면 본래 없는 토끼 뿔을 찾음과 같네. 바른 견해 이 세간 벗어남이고 삿된 견해 세간 속에 헤매임이니 삿되고 바름 모두 쳐 없애버리면 보리자성 뚜렷이 드러나리라. 이 노래가 곧 돈교의 큰 법문이며 또한 진리의 배라 이름하나니 어리석게 이 법문을 받아 들으면 오래고 머나먼 겁 지나게 되고 깨달으면 바로 찰나 사이에 있네.

* 해설 *   위의 게송은 선(禪)과 교(敎), 돈교(頓敎)와 점교(漸敎)를 법 자체에 확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려는 치우친 견해를 없애주며, 재가 출가를 이원적으로 보려거나 진리를 역사 밖, 모습 밖에서 따로 구하려는 집착을 깨뜨려 준다.   게송에서 설법과 참마음을 함께 통함이란 수행과 전법, 깨달음과 역사, 이(理)와 사(事)를 함께 통하고 함께 거두어 실천하도록 하는 가르침이다. 견성법은 모습이 곧 모습 아님을 사무쳐 봄이므로 견성법은 결코 전법행과 무관한 초월적인 길이 아니니, 견성의 한 법이 바로 이사무애(理事無애)의 길이며, 수행과 전법을 아우르는 크나큰 삶의 길[大乘道]이다.   단박 깨침을 종(宗)으로 하는 돈교(頓敎)와 점차 깨닫도록 이끌어 올리는 점교(漸敎) 또한 법 자체에 확정된 모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중생의 근기와 병통에 차별이 있으므로 돈과 점의 이름과 방편이 세워지는 것이다.   곧 사람의 근기에 따라 가르침을 세우는 위인실단(爲人悉壇), 중생의 병통에 따라 법을 열어내는 대치실단(對治悉壇), 세상 대중의 일반적인 풍조에 따라 방편을 여는 세계실단(世界悉壇)으로 돈교와 점교, 비밀교(秘密敎)와 부정교(不定敎)의 교화형식이 벌어지고, 장교(藏敎). 통교(通敎). 별교(別敎). 원교(圓敎)의 법이 차별되지만, 실상 자체를 바로 보이는 제일의실단(第一義悉壇)에는 위와 같은 차별적인 법의 이름과 방편의 이름이 세워질 수 없는 것이다.   삿됨과 바름에 있어서도 번뇌의 뜻으로 모습을 집착하면 삿됨이라 하지만, 번뇌가 사라지면 그 모습을 없애지 않고 바름이 있는 것이니, 삿됨이 삿됨 아닌 줄 알면 삿됨 그 자리에 바로 바름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삿됨 바름을 실체화하면 그것이 바로 삿됨이 되고, 삿됨 바름을 모두 함께 쓰지 않는 곳에 참으로 바름이 있다. 참으로 바름이란 삿됨이 삿됨아니므로 삿됨에 빠짐 없이 삿됨을 늘 바름으로 돌이켜내는 바름이니, 참으로 바르게 세상을 살아가는 이는 세간의 있는 모습에도 얽히지 않고 세간 밖에 따로 출세간의 도를 찾지도 않는다.   그는 세간이 실로 있지 않으므로 세간을 취하지 않고, 세간이 실로 없는 것이 아니므로 세간을 버리지 않으니, 그 뜻을 혜능선사는 불법이 세간에 있으니 세간을 떠나지 않고 깨달으라고 말한다. 또한 삿됨과 바름의 실체성에 메이지 않으므로 삿됨과 바름을 모두 쓰지 않되, 삿됨을 늘 바름으로 돌이켜 삶이 온통 바름이 되는 해탈의 길을 혜능선사는 '삿됨과 바름 모두 쳐 없애버리면 보리자성 두렷이 드러나리라'고 말한다.  돈교법을 설하신 뒤 모두 참성품 보기를 원함[頓敎說已 普願見性]

[원문]   대사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이제 대범사에서 이 돈교(頓敎)의 법을 설했으니 널리 법계의 중생이 말 아래 단박 성품을 보아 깨달음을 이루기[見性成佛]원할 뿐이다."   그 때 위사군과 관료, 출가대중과 일반대중이 함께 대사의 설하신 바를 듣고 깨닫지 않는 자가 없었으니, 모두 한 때에 절하고 이렇게 찬탄했다.   "참으로 거룩하도다.어찌 영남에 성인이 나오시리라 생각이나 했겠는가."

* 해설 *   요즈음 말폐에 떨어진 선가의 가풍에서 견성(見性)과 돈오(頓悟)는 범부중생이 가까이 할 수 없는 아득한 곳, 선정을 익혀 높고 높은 경지를 통과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초월적인 곳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혜능선사는 듣는 중생이 모두가 견성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고, 듣는 대중은 모두 설법의 말씀 아래 깨닫지 않는 자가 없었다 했으니, 이것이 바로 돈교의 참모습이며 올바로 설법하는 스승의 모습이자 바르게 청법하는 제자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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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성의 집 · borisung.com · 2001년 원본의 메뉴·게시판·사진을 그대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