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선지식이여, 나의 이 법문(法門)은 위로부터 내려오면서 먼저 생각 없음[無念]으로 실천의 뼈대[宗]를 삼고, 모습 없음[無相]으로 실천의 바탕[體]을 삼으며, 머뭄 없음[無住]으로 실천의 뿌리[本]를 삼는다.
모습 없음[無相]이란 모습에서 모습 떠남이며[於相離相],생각 없음[無念]이란 생각에서 생각 없음이다[於念無念].그리고 머뭄 없음[無住]이란 사람의 본성품[本性]이 세간의 선과 악, 고움과 미움 나아가서는 원수거나 친함에 대해서 그리고 말로 상처주거나 속이고 다툴 때 그 모두를 공(空)으로 삼아 갚아 해칠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생각 생각 속에 앞의 경계를 생각하지 않음[不思前境]이다.
만약 앞 생각과 지금의 생각, 뒷 생각이 생각 생각 서로 이어져 끊어지지 않으면 얽혀 묶임이라 하고, 모든 법에 대해서 생각 생각 머물지 않으면[於法不住]곧 묶임 없음이니, 이것이 바로 머뭄 없으므로 실천의 뿌리를 삼는 것이다.
선지식이여, 밖으로 모든 모습 떠나면 모습 없음이라 하고, 모습을 떠날 수 있으면 삶의 본 바탕이 깨끗해 지니[法體淸淨],이것이 바로 모습 없음으로 실천의 바탕을 삼는 것이다.
선지식이여, 모든 객관 경계 위에 마음이 물들지 않음을 생각 없음이라 하니, 그것은 스스로의 생각 위에서 늘 모든 경계를 떠나며 모든 경계 위에서 물든 마음 내지 않음이다. 만약 다만 백 가지 것 생각하지 않고 생각을 다해 없애버리려 할 땐 생각이 끊어지면 곧 죽어 다른 곳에 태어날 것이니 이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참된 삶의 길 배우는 자는 깊이 이를 생각해야 한다.
만약 참된 법의 뜻[法意]을 알지 못하여 스스로 그르침은 오히려 그렇다 할 수 있지만, 다시 다른 사람에게 권하게 되면 스스로 헤매어 보지 못할 뿐더러 부처님의 경전까지 비방하게 된다. 그러므로 생각 없음[無念]을 세워 실천의 뼈대[宗]를 삼는 것이다.
* 해설 *
돈오법문은 생각 없음[無念]을 종(宗)을 삼고, 모습 없음[無相]으로 체(體)를 삼으며, 머뭄 없음[無住]으로 근본[本]을 삼는다. 하니, 모습 없음은 세계의 참모습인 법신(法身)이며, 생각 없음은 법신을 드러내는 반야(般若)이며, 머뭄 없음은 반야의 열려진 해탈의 활동[解脫]이다.
지금 중생이 쓰는 생각[念]은 실제로서의 생각이 아니라 세계인 생각이며, 생각 속에 드러나는 세계는 생각 밖에 닫혀진 세계가 아니라 생각인 세계이다. 그래서 초기불교는 육근(六根),육식(六識),육경(六境)을 마음을 중심으로 해서 표현할 때는 안의 마음[內心],안팎이 겹쳐진 마음[內外心],밖의 마음[外心]이라 하고, 물질을 중심으로 해서 표현할 때는 안의 물질[內色],안팎이 겹쳐지는 물질[內外色],밖의 물질[外色]이라 하니, 아는 마음도 공하고 알려지는 세계도 공한것이다.
세계가 마음인 세계이므로 생각에서 생각을 떠나면 모습 아닌 세계의 참모습이 드러나고, 마음이 세계인 마음이므로 모습에서 모습을 떠나면 마음은 생각 아닌 참 생각으로 밝혀진다.
그리고 모습이 곧 모습 아니므로 모습에도 머물지 않고, 모습 아님이 모습 아님도 아니므로 모습 없음에도 빠지지 않으면, 모습 있음과 모습 없음에 머뭄 없는 창조적인 행이 드러나니, 이것이 머뭄 없는 묘한 행[無住妙行]이다.
그런데 모습 없는 존재의 실상은 모습 없되 모습 없음도 없으므로 지혜의 빛이 어둡지 않고, 지혜는 있되 공하므로 해탈의 활동이 막힘이 없으며, 막힘 없는 해탈의 활동도 나와 남이 없고 머뭄이 없으므로 늘 고요하니, 모습 없는 실상과 생각 없는 참생각과 머뭄 없는 활동은 서로 둘이 없고 다름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