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성BORISUNG

서품 제1 (序品第一) ①

보리성2002-02-26 12:10조회 7No. 10
서품 제1 (序品第一)

  이것은 경의 본론으로 들어 가는 문과 같은 부분이기 때문에 서품(序品)이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먼저 세존께서, 기사굴산(영취산)에서 '무량의'의 가르침을 설하실 때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부처님께서는 이 경을 끝마치시자 조용히 앉으시고는 조금도 움직이시지 않으셨습니다. 삼매(三昧:정신통일)에 드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로서, 부처님께서는 반드시 설법하시기 전이나 후에 이렇게 명상(暝想)에 드십니다. 그리고는, 가르침을 어떠한 방법으로 설해야 일반 대중의 마음속에 잘 스며들어갈까를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또, 설한 가르침이 아무쪼록 올바르게 받아 들여지고, 올바르게 전해지기를 염원하시는 것입니다. 석존께서는 하루에 다섯 시간이나 이러한 명상에 드셨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적어도 가르침을 듣기 전 몇분, 가르침을 듣고난 후 몇분만이라도, 조용히 눈을 감고 들은 가르침을 반복하여 마음에 새기고, 마음을 깨끗히 하여 부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염원해야 겠습니다.   한편, 이렇게 부처님께서 삼매에 드시자, 천지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감동하여 하늘에서 아름다운 꽃이 떨어지고, 땅도 진동합니다. 듣는 대중들도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감격을 느끼고, 마음속으로 환희하며 합장하면서 일심으로 부처님을 우러러 받들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 때, 부처님의 미간에 있는 백호상(白毫相)에서 찬란한 빛이 나와 천지의 모든 세계를 비추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지의 어디를 보아도 육도에 방황하는 중생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어떤 원인에 의해서 그러한 결과가 되었는가 하는것도 확실히 보이는 것입니다.   또, 어디를 보아도 부처님이 계시고 사람들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거나 수행을 하고 있거나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여러 보살이 보살도를 행하고 있는 것도 보이는가 하면, 부처님이 입멸하시자 그 불사리(佛舍利)를 모신 칠보탑(七寶塔)을 세우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것을 보고 불가사의하게 생각한 미륵보살(彌勒菩薩)은 그 이유를 물어보려 했으나, 세존께서 삼매에 드셔 계시기 때문에, 잠시 어쩔줄 몰라하다가 언뜻 생각이 미친 것은, 문수사리(文殊師利)가 마치 부처님의 아들과 같이 과거 오랫동안 가깝게 가르침을 받고 부처님을 공양해 온 사람이었기 때문에, 문수사리에게 물어 보면, 이 괴이한 일의 까닭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또, 그 자리를 가득 메운 대중들도 모두 그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것을 미륵보살은 잘 알고 있었기에, 문수사리를 향하여, 부처님 미간의 백호상에서 빛이 나오는 불가사의한 일은 어째서 일어난 것인가, 그리고 동방 일만팔천이라고 하는 한없는 국토를 비추시고, 또한 그 곳에 부처님 세계의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이 보이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눈으로 본 불가사의한 광경을 길고 아름다운 시(계송)로 읊으면서, 다시 한번 정중하게 가르침을 청하였습니다.   그러자, 문수사리는 대중을 향하여 이렇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제가 해아려 보기는, 세존께서 이제부터 대단히 중요한 법을 설하시려고 하시는 듯 합니다. 제가 과거의 세상에서 많은 부처님을 모시고 있었을 때, 부처님이 이렇게 불가사의한 것을 나타내신 후에는 반드시 중요한 가르침을 설하셨기 때문입니다.   아주 먼 옛날에 일월등명여래(日月燈明如來)라고 하는 부처님이 계셨습니다. 그 부처님은 완전무결한 덕을 갖추신 분으로서 올바른 법을 설함에 있어, 설하시는 방법은 처음과 중간과 마지막이 조금씩 달랐습니다만, 그 가르침은 언제나 오직 하나의 진리 위에 서 있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그 가르침의 의미는 깊고, 그 가르침의 방법은 매우 자상하고 알기 쉬웠으며, 또 설하신 것은 완전무결해서 순수하고 훌륭한 가르침이었으며, 좋은 행동을 실행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미혹됨이 없는 마음을 얻고 싶은 사람에게는, 사제(四諦)의 법을 설하시어, 생노병사라는 인생의 괴로움에 구애받지 않는 마음과, 인생의 변화에 놀라지 않는 마음가짐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벽지불(벽支佛:연각(緣覺))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십이인연의 법을 설하시고, 여러 보살들을 위해서는 육바라밀을 설하여 최고의 지혜로 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이'사제'와 '육바라밀'이라는 것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직면하는 괴로움과 번민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절대안온의 경지를 얻을 수 있는지를 가르치신 법문으로서, 석존의 가르침의 큰 중심을 이루는 것이므로, 여기서 자세하게 설명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사제(四諦)   사제라고 하는 것은 '고제(苦諦)''집제(集諦)''멸제(滅諦)''도제(道諦)'의 네가지 깨달음입니다. 먼저 '고제'입니다만, 이것은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괴로움이다'라는 것입니다. 인생은 첫째, 정신적인 고통, 둘째, 육체적인 고통, 셋째, 경제적인 고통, 그 밖에 여러 가지 고통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인생고로 부터 이리저리 피해 달아나지 않고, 그 실태를 직시하고 꿰뚫어 보는 것이 '고제'입니다.   '집제'라는 것은, 이러한 인생고는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하는 원인을 성찰하고 탐구하여 그것을 확실하게 깨닫는 것입니다. 그것은 '화성유품 제7'에서 자세하게 설명할 '십이인연'과, 역시 나중에 설명할 제법실상(諸法實相), 십여시(十如是)에 아주 확실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멸제'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인생의 괴로움이 소멸된 안온의 경지입니다. 정신적인 괴로움, 육체적인 괴로움, 경제적인 괴로움, 그 밖의 모든 괴로움을 끊어 버리고, 이 세상에 적광토(寂光土)를 출현시킨 모습입니다.   이것은 석존께서 깨달으신 '제행무상(諸行無相)''제법무아(諸法無我)''열반적정(涅槃寂靜)'이라는 3대 진리를 깨달을 수 있어야만 비로소 도달 할 수 있는 경지입니다. 이 3대 진리는 매우 중요한 말씀이므로, 조금 후에 곧 상세히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3대진리를 깨닫는다는 것은, 범부에게는 그리 간단히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에는 매일매일의 수행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묘(妙:마음), 체(體:모습), 진(振:행동)의 3면으로 보살도를 실천하는 일입니다. 더 깊이 말한다면, 다음에 나오는 '팔정도(八道)'와 '육바라밀'에 정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생은 고통의 세계임을 직시하고(고제), 그 진정한 원인을 파악하며(집제), 그리고 매일매일의 수행에 의해서(도제), 모든 고뇌를 소멸하라(멸제) 하는 가르침이 사제의 법문입니다. 그러면, '제행무상''제법무아''열반적정'에 대하여 설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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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성의 집 · borisung.com · 2001년 원본의 메뉴·게시판·사진을 그대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