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행무상(諸行無常)
'제행무상'이라는 말은,'평가물어(平家物語:일본 고대 소설)'의 권두에 있는 '기원정사(祈園精舍)의 종소리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울림이 있고'라는 말처럼, 문장이 오래된 때문인지 모르지만 의미가 점점 바뀌어져, 지금은 '세상은 모두 헛된 것이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불교에 대한 큰 오해의 원인이 되고 있고 그것이 '이 세상은 부질없는 것이므로, 내세(미래세상)에서 좋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를 오로지 염원하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이 심각한 오류를 고치기 위해서는, 먼저'제행무상'이라고 하는 말의 의미부터 확실히 이해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제행'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이라는 의미입니다. '무상'이란 글자 그대로 '한결같지 않다', 즉 '언제나 같은 상태로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는 것으로서, 곧 '변화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제행무상'이라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변화하는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창공 저편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태양도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의 과학이 확실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어제의 자신의 몸과 오늘의 몸은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 실은 세포 하나하나가 끊임없이 소멸되고 또 생긴다는, 이런 식으로 약 7년 동안에 모든 세포가 교체된다고 하기 때문에, 몸 또한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인간이 마음으로 느끼는 괴로움이나 슬픔, 즐거움이나 기쁨 등이 실로 부질없이 변해 버린다는 것은, 누구나 경험에 의해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행무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것은 다 헛된 것이다. 믿을 수 없으니 단념하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면, 말도 안 되는 큰 오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것이 아니라, '모든것이 변하는 것을 확실히 알고, 눈앞의 작은 변화에 놀라거나 조급해 하지 않는 마음을 지녀라'라는 가르침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제행무상'을 적극적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들 인간의 힘이 얼마나 강한 것인가를 잘 알 수 있고, 어째서 인간의 삶은 항상 힘있게 위를 향해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는 것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또 서로가 감사함을 느끼고, 평등한 사랑과 일체감을 갖고 사이좋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실감이, 샘물처럼 가슴에 솟아 오를 것입니다. 이것이 다름아닌 '일대사(一大事)'인 것입니다.
몇 십억년전의 지구는 화산으로부터 솟아 오른 몇 천도나 되는 용암이 가득하고, 하늘에는 수증기와 가스가 자욱하게 끼어 있어서 생물이라는 것은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약 20억년전쯤 지구가 점점 차가워지면서 비로소 생명이 있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더우기, 그것은 세균과 같이, 현미경이 아니면 볼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작고 작은 생명체는 대홍수나 대지진, 대화산의 폭팔이나 지독한 더위나 추위에 끊임없이 시달렸으나, 끝내 없어지지 않고 살아 남았던 것입니다. 없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화하여 갔습니다. 아메바에서, 곤충류, 어류, 양서류, 패류, 조류, 포유류로 점점 진화하여 마침내 인간으로 까지 발전해 왔다고 하는 것이, 오늘날 학계의 정설로 되어 있습니다.
그 생명의 강인함을 우리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들은 자칫 잃어버릴 수 있는 생명력에 대한 신념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눈 앞의 병이나 생활의 고통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인 우리는 이러한 큰 박해와 큰 고난을 해쳐나와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 그 생명력이 나의 이 몸에도 깃들어 있는 것이다라는 새로운 용기가 솟아 나는 것입니다.
또한, 아메바로부터 인간으로 진화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아도, 그리고 인간이 되고 나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되돌아보아도, 여하튼 한발 한발 위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위를 향하여 전진하는 것이 인간이 걸어야 할 코스에 꼭 맞는 삶의 방식이고, 어떤 곳에 머무르거나 좋지 못한 쪽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인간이 나갈 길에 어긋나는 삶이라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되면, 우리들은 시시각각으로 인간으로서의 이상적인 경지를 향하여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아니, '......않으면 안되는'것 보다도, 그것이 더할 나위 없이 당연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인간으로서의 이상적인 경지라고 하면,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부처님'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마다 원하고, 시시각각 실천하는 것은 인간이 걸어가야 할 방향에 꼭 일치하기 때문에,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인간으로서의 가야할 길과 어긋나 있는 건강이라든가 생활이, 올바른 길로 돌아 가는 것도 아주 당연합니다.
또 최초의 생명이라는 것도 즐비하게 녹아 있는 용암이나 금속, 가스나 수증기와 같은 것에서 발생하여, 그것이 분해되어 한편으로 식물이 되고 또 한편에서는 동물이 되며, 벌레도 되고 어류도 되고, 양서류도 되고, 조류도 되고, 포유류가 되어 결국에는 인간이 되었다고 하는 과정을 되돌아보면, 나무도, 돌도, 금속도, 천지만물 모두 조상은 다 똑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식물도, 새도, 야생 동물도 모두 형제라고 하는 친근감이 느껴지게 됩니다.
그리고 식물에게도, 곤충에게도, 어류에게도, 새들에게도, 야생동물에게도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이나마 생기게 되지요. 그러니 우리들에게 가장 가까운 부모, 조부모, 그 이외의 선조의 제령(諸靈)에 대하여서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한다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은 더욱 당연합니다.
실로 일체 만물은 모두 형제입니다. 하물며,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형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대립하고 미워하며, 빼앗으며 결국에는 서로 죽이려고까지 하는 것은, 결코 인간의 진정한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곧 눈 앞의 변화에 사로잡혀 눈앞의 이해득실에 눈이 멀어 버리기 때문이며, 인간 모두가 부처님의 가르침인 '제행무상'을 확실히 관(觀)한다면, 그 미혹은 저절로 사라지고, 평화롭고 올바른 인간의 삶의 방식이 이 세상에 실현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