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보살을 교화하신다
이렇게 설하신 후, 석존께서는 여기서 한층 더 엄격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것도 역시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즉, '제불여래는 오직 보살을 교화하신다'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보살만을 교화하시므로, 성문과 연각은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다'는 셈이 되므로, '부처님음 일체 중생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나오셨다'라는 말과 웬지 모순이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잘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는 이렇게 언뜻 보기에 모순이라고 생각되는 점이 많이 있습니다.《법화경》속에도 많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모순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사물을 정확히 파악하여 말씀하시기 때문에, 가벼운 시각으로는 그 말씀의 큰 함축을 파악하지 못하므로 모순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얕은 독해법으로는, 머리가 혼동되어 불법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든가, 가르침이 일관되지 않기 때문에 믿을만하지 못하다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허지만 경전은 깊게 읽지 않으면 안 됩니다. 깊이 읽는 것이 어려운 사람은 몇번이고 반복해서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렴풋하게라도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도 잘 알 수 없다면, 적당한 사람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일 혼자의 판단으로 '모순이니 소용없다'고 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잘못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법화경》을 굳게 수지(受持: 받아 들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바로 이 점을 말한 것으로, 처음에는 어렵고 잘 알지 못하더라도, 결코 도중에 떨어져 나가는 일이 없이 열심히 끝까지 매달린다면 언젠가는 알 수 있을 때가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편, '부처님은 오직 보살만을 교화하신다'고 하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자기자신만 깨달으면, 그것으로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동안은, 참된 깨달음이 아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은 아직 깨닫지 못햇지만, 자신만은 깨달았다고 하는 마음은, 다른 많은 사람과 떨어져 있는 마음이다. 다른 이들과 융합되어 있지 않은 고독한 마음이다. 그리고 '아집'의 마음이 남아 있어서, '제법무아'의 경지에는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진정한 깨달음이 아닌 것이다. 자신도 깨닫고 모두가 깨달으며, 자신도 구제받고 모두 다 구제 받는다는 것, 그리고 모두 함께 구제되지 않으면 진정으로 구제받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며, 해탈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실로, 깨달음이라는 것은, 조그마한 차이가 커다란 장벽이 되는 것으로서, 앞에서 설명하였던 것처럼, 아직 소수밖에 배우지 않았을 때는, 1을 3으로 나누어도 0.333. 이 되어 언제까지나 나누어 떨어지지 않았으며, 3분의 1이라고 하는 정확한 수에 아주 가까운 곳까지는 근접하였지만, 아무리 해도 완전히 그곳까지는 이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분수라고 하는 수에 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배우자마자, 돌연, 그 진정한 수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만 깨닫고, 나만 구제받자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은 설령, 사리불과 같은 유명한 대지혜자라도, 부처님의 깨달음에 아주 가까운 곳까지 와 있으면서도, 그 사이에 있는 미소한것 같으면서도 큰 장벽을 아무리 해도 넘지 못합니다. 그런데 '대중과 함께 구제받는 곳에 진정한 구제가 있다'라는 것을 알게 되는 때, 바로 그 장벽을 활짝 뛰어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말씀의 참뜻으로서, 보살이라는 것은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수행하는 사람'이고, 이 보살이 아니고서는 진정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헤아리지 못한다고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