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탁(五濁)의 악세(惡世)
'오탁의 악세'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그 첫번째 겁탁(劫濁)이라는 것은, 세월이 오래 흘렀기 때문에 일어나게 된 악입니다. 인간에 있어서도 좋지 않는 상태가 오래 계속되면, 동맥경화와 같은 병을 일으키게 되어 여러가지 피해가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가끔씩 신선한 공기를 마시지 않으면 안되는 것과 같습니다.
두번째의 번뇌탁(煩腦濁)이라고 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 번뇌(미혹)로 인해 인간 모두가 보잘것 없고 하찮은 행위를 하게 된 것으로서, 죄악의 횡행은 이 때문입니다.
세번째의 중생탁(衆生濁)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표면적 성질이 다른 점으로 인해 일어나는 싸움입니다. 본래는, 하나의 생명으로 통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표면의 차이에 사로 잡혀 각자가 자신만을 주장하기 때문에, 대립이 생기고 가정과 사회가 불화를 일으키는 상태입니다.
네번째의 견탁(見濁)이라는 것은, 사물을 보는 시각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세상의 혼란입니다. 모두가 자기본위의 좁은 견해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어긋나는 일이 생기는 것이고, 모두가 부처님의 가르침과 같은 올바른 사물의 견해를 가질 수 있게되면, 자연히 싸움이 없는 평화로운 세계가 될 것입니다.
다섯번째의 명탁(命濁)이라는 것은, 인간의 수명이 짧아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나 하고자 하는 일이 눈 앞의 이익과 효과만을 추구하고,조그만 일에도 걱정을 하게 되며, 그 때문에 세상에는 보기 싫은 분쟁이 끊이지 않아 편안한 곳이 없는 상태입니다. 이것도, 모두가 인간 본질이 영원하다는 것에 눈이 뜨이기만 하면, 반드시 구제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오탁의 악세가 되면, 너무나도 중생의 미혹이 깊어지기 때문에, 곧바로 최고의 가르침을 설하여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먼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미혹을 없애야 한다'고 하는 학습주의(성문승), '듣고 배우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안 되며, 자신이 체험하여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체험주의(연각승), 그리고'자신만이 구제되어서는 진정으로 구제되는 것이라 할 수 없다. 타인을 구제하는 행동이야말로 자신도 구하는 것이다'라는 행동주의(보살승)의 삼승으로 나누어 차례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이 방편들을 방편으로 알고, 더욱이 그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알았을 때, 그 방편은 그대로 진실로 통하는 대도(大道)가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어떤 곳에서부터 들어가도 상관없습니다.불사리(佛舍利)를 공양하는 수행부터라도, 탑을 세우는 일부터라도 좋습니다. 또, 초원속에 흙을 쌓아 불묘(佛廟)를 세우는 것부터라도 좋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가 장난으로 모래를 쌓아 불탑과 비슷한 것을 만드는 것 조차도 부처님의 길에 들어 가는 문인 것입니다. 여하튼, 좋은 일은 무엇이든지 좋으니 그 곳에서 시작해서 들어가는 것이며, 그리고 점점 더 공덕을 쌓아 가면, 결국은 대자비심을 갖추게 되어, 마침내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것이다고 설하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내세성불도(來世成佛道)하리니 (내세에 불도를 성취하리라)'라고 하는 '내세(來世)'입니다. 이것은 결코 '죽은 후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점차 수행을 쌓아 가면, 언젠가는 성취하리라.'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법화경》의 가르침은, '깨달으면 이 몸이 곧 부처이고, 이 세상이 곧 적광토(寂光土)이다'라는 가르침입니다. 죽지 않으면 극락에 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으며, 극락도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 있다고 하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리고, '끝내는 소승으로써 중생을 제도하지 아니하신다'라는 한귀절이 있습니다. 이것을 오해하여, '결국은 소승의 가르침으로는 중생을 구제하지 않으셨다'라고 생각하여 더욱더 모순을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소승만으로는, 최종적으로 중생을 제도하는데까지 이르지 않았다'라는 것이 참된 의미입니다. 이것은 소승의 가르침으로도 많은 중생을 구제하시지만, 최종적인 구제, 최고의 구제까지는 소승의 가르침으로만 끌어 올리지 않았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는 마지막에, '사리불이여,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와같이 수없는 방편으로써 사람에 따라, 경우에 따라 가르침을 설하십니다. 그 때문에, 요는 그것을 반복해서 배우고, 일상생활에서 비추어 가면서 실행해 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부처님께서는 점차적으로 가르침을 설하시어, 결국에는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과 같은 경지로 이끌어 주신다'라는 일대사(一大事)를 완전히 깨달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또한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마음 속에 어떤 의혹도 가짐이 없이 큰 환희(歡喜)를 느껴, 자신도 부처가 될 수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강한 어조로써 설법을 끝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