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성BORISUNG

비유품 제3 (譬喩品第三) ③

보리성2002-06-21 22:55조회 4No. 24
비유품 제3 (譬喩品第三)

  삼계는 나의 것,중생은 나의 자식   이 우주는 전부 내 것이다, 만물은 모두 내 자식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구제할 수 있는 것은, 나 한 사람뿐이다---얼마나 자신에 가득 찬 말씀입니까? 그러나 이것이 실존했던 석가모니 세존 한 분만을 가리킨 것이 아닌 것은 물론입니다. '나'라고 하는 것은 곧 '부처님'이라는 의미이며, '부처님'이란 '진리를 깨달은 자에게는 우주 전체가 그 사람의 것이다'라고 하는 대선언인 것입니다.   석존에 도저히 미치지 못할 우리들조차도, 조용히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 앉히며 '우주 전체는 내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뭐라고 형용할 수 없이 넓고 느긋한 마음이 되지 않겠습니까? 요즈음, 화성에 토지를 사려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만, 반 장난으로 한다해도, 인간의 마음을 넓게 하기 위해서는 아주 적합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우리들이 몇 억광년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별에 대한 것을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면, 그 순간 그 별은 우리들의 마음 속에 빨려 들어옵니다. 자신의 것이 됩니다. 몇 만년 전의 일, 몇 만년 후의 일을 마음 속으로 생각하면, 순식간에 그 세계가 우리들 마음의 소유가 됩니다. 시간과 공간(때와 장소)을 초월해서 어디까지도 넓혀질 수 있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니 더 말할 필요없이, 부처님과 똑같이 진정한 우주의 진리를 깨닫고 부처님과 일체가 될 수 있다면, 실로 이 세상은 나의 것이 됩니다.   '내 것'이라는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우주 전체에 용해되었다고 느끼게 됩니다. 즉, '무아(無我)'가 되는 것입니다.   작은 '나'를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체에 의해 살아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순식간에 우주 전체로 퍼져 나갑니다. '무아'야 말로 '우주가 내 것'과 통하는 오직 하나의 길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들의 마음은 진실로 자유로워집니다.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더라도, 하고자 하는 일과 이루고자 하는 일이 모든 사람을 살리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름아닌 부처님의 경지인 것입니다.   그 곳까지 단숨에 갈 수 없다고 하여도, 형식적이라도 좋으니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형식(방편)부터라도 들어 가지 않으면, 진실에 이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경전을 읽는 것도, 설법을 듣는 것도, 조용히 생각하는 것도, 사람들을 위해서 애쓰는 것도, 모두 '아(我)'를 버리고 전체에 용해되기 위한 수행이라 해도 좋습니다. 이것이 '화(和)'의 정신입니다. 예를 들면,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좋습니다. 이러한 수행을 계속해 나간다면 조금씩이지만 한발 한발 부처님께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 하고 정말 느끼게 된다면 우리들은 대환희(大歡喜)가 마음 속깊이 솟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도저히 나는 부처님과 같은 모습은 될 수 없다---고 하는 비굴해하는 마음은 지금 당장 버려야 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의 '신해품'을 읽으면 충분히 납득이 갈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 뒤에, 이 《법화경》을 사람들에게 설할 때 알아야 할 점과, 이 가르침에 등을 돌리는 사람은 어떤 응보를 받는지가 설하여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오해받기 쉬운 부분으로는 '함부로 설하지 마시오'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필요없이 설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설법을 하지 말고, 부처님의 마음에 맞는 설법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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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성의 집 · borisung.com · 2001년 원본의 메뉴·게시판·사진을 그대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