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성BORISUNG

신해품 제4 (信解品第四) ②

보리성2002-08-05 03:11조회 4No. 27
신해품 제4 (信解品第四)

  장자궁자(長者窮子)의 비유   어렸을 때 아버지의 집에서 가출하여 오래동안 타국에서 궁핍한 생활을 한 사이 어느 새 쉰살이 되어 버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이는 늙어 가고 더욱 가난해지자 여기저기 사방으로 떠돌아 다니며 생활양식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방랑생활을 하는 사이, 발은 우연히도 고향 쪽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도 하나뿐인 아들을 잃고 매우 슬퍼하여 나라 안을 샅샅이 뒤졌으나, 결국 찾아내지 못하고, 할 수 없이 어떤 마을에 이르러, 그 곳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는 얼마만큼이나 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을 정도의 재산가가 되어, 훌륭한 저택에서 살고, 하인도 많이 두었습니다.   그 아들은 여러 촌락을 헤매며 돌아 다니다 마침내 그 마을에 당도하여 아버지의 집인 줄도 모르고 그 문 앞에 멈춰 섰습니다.   한편, 아버지로서는 하루도 아들을 잊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밝힌 적은 없으나, 늘 '나도 이제 어느덧 나이가 들었다. 많은 재산은 있지만, 내가 죽고 나면 이것 또한 훌훌 흩어져 버릴 것이리라. 그 애에게 이 재산을 물려 준다면, 내 마음이 안정되어 근심과 걱정이 없어질텐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아들은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에게 고용되어 일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여기서 일을 얻어 볼까하고 서게 된 곳이 우연히도 아버지의 집이었습니다.   문 옆에 잠시 멈춰 서서, 멀리 집안을 보니, 매우 훌륭한 사람이 사자를 조각한 의자에 앉아 있고, 대단히 훌륭한 사람들이 주위에 정중하게 둘러서 있었습니다. 그 주위의 모습도 뭐라 말할 수 없을만큼 아름답고 장엄하여 저절로 머리가 숙여질 정도였습니다.   아들은 문뜩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사람은 틀림없이 왕이 아니면 왕과 같은 사람일 것이다. 도저히 나와 같은 사람이 일할 곳이 아니구나. 역시 나에게 어울리는 곳에 가서 일하는 편이 낫다. 이런 곳에 오래 있게 되면, 강제로 붙잡혀서 호된 경우를 당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는 허겁지겁 도망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멀리서 그 남자를 보고, 한 눈에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아들이 자기 스스로 이렇게 돌아왔으니, 이제 이 모든 재산을 물려 줄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며 기뻐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들이 도망치려 하는 것을 본 아버지는 놀라서, 급히 옆에 있던 하인에게 저 남자를 데려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하인은 곧 달려가 그를 붙잡았습니다. 아들은 놀라하며 '나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왜 붙잡는 겁니까?'라며 큰 소리로 울부짖었습니다. 하인은 주인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무조건 강제로 끌고 갔습니다.   아들은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이렇게 잡혔다. 이것은 필시 죽이려는 것이 틀림없다.---이렇게 생각한 순간, 놀란 나머지 정신을 잃고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이를 멀리서 보고 있던 아버지는, 하인들을 향하여 '그 남자를 고용하지 않겠으니 강제로 끌어 오지 말라. 얼굴에 물을 끼얹어 깨어나도록 하라. 그리고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그 아들의 마음이 비굴해져 도저히 자기와 같은 사람에게는 가까이 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라는것은 확실히 알았으나, 당분간은 남에게 밝히지 않고 다른 수단으로 점차 자기 곁으로 가까이 오게 하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인이 물을 끼얹어 깨어 나게 하고는, '너를 놓아 줄테니 네 마음대로 가라'고 말하자, 아들은 기뻐서 굽신거리며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마을로 가서 그 곳에서 의식을 구하였습니다.  한편, 아버지 장자는 어떻게 해서든 그 아들을 가까이 데려오려고 생각하여, 얼굴 생김새나 옷차림이 초라한 두 명의 하인을 그에게 보냈습니다.   장자는 '일하기 좋은 곳이 있으니 오라 하고, 그에게 임금은 배로 주겠다고 말하라. 어떤 일이냐고 물으면, 화장실이나 하수구 청소이며, 우리도 함께 일하는 동료라고 말하라'고 일렀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은, 자신에게 딱 맞는 일이라 생각하여 안심하고 그곳에 가서 먼저 품삯을 받은 뒤, 화장실 청소 등을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을 본 아버지는, '아! 저것이 나의 아들인가'하며 불쌍하게 생각하면서도 믿기지 않는 기분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 아버지가 창문에서 아들 모습을 내다보니, 너무나도 수척해서 초췌하게 보였으며, 먼지투성이가 되어 일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본 아버지는 가엾음에 견딜 수 없어 자신도 더러운 옷으로 갈아입고, 몸도 일부러 흙이나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손에는 거름치는 통을 들고 모든 일꾼들과 같이 어울렸습니다.   그리고,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일하라'든가 '게으름을 피지 말라'라는 식으로 얘기를 건 다음에, 조금씩 아들의 경계심을 풀면서, 드디어 그의 곁으로 가까이 갈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향하여,   '너는 몹시 초라하게 보이는구나. 먹을 것이 궁해서 그런 것이 아니냐? 이제부터는 문제없다. 항상 여기에 와서 일해도 괜찮으니, 다시는 다른 곳으로 가지 말라. 임금도 올려 줄 것이며, 여러 가지 살림도구나 쌀, 소금, 된장 무엇이든 써도 좋다. 나이를 먹은 하인에게 너를 도와 주도록 해 줄테니, 안심하고 여기에 있도록 하여라.   나는 왜 그런지 너의 아버지 같은 기분이 드는구나. 그건 내가 꽤 나이를 먹었고, 너는 아직 젊기 때문이겠지. 너는 이제부터 일을 하는데 있어 사람을 속이거나, 게으름을 피거나, 노하거나, 원망해서는 안된다. 다른 고용인과는 달리 네가 그런 나쁜짓을 한다면, 나는 정말로 슬퍼질 것이다. 어떠냐? 지금부터는 너를 진정 나의 아들과 같이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장자는 그 아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이러한 대우를 기쁘게는 생각하였으나, 아직 자신은 미천한 인간이라고 깊이 믿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아버지는 그후 20년 동안 역시 더러운 곳의 청소를 계속하게 하였습니다.   20년이 지나자, 어느 새 그 집에 대해 흉허물이 없어지고, 출입함에도 두려움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비굴한 본심은 역시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아버지 장자는 깊은 병이 들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는, 수많은 보물이 들어 있는 창고의 책임 일체를 그 아들에게 일임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그런 신임을 받고서도 아직 여전히 비굴한 생각이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아들도 점차 그 커다란 집과 재산에 대하여 낱낱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 집의 일 정도는 스스로 도맡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조심스러워 했던 자신의 마음이 부끄럽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안 아버지는 마침내 안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임종을 맞이했을 때, 친족일가, 국왕, 대신, 무사, 거사(한 집안의 주인) 등을 모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 모인 앞에서, 사실 이 사람은 진짜 나의 아들입니다고 그 동안의 사정을 이야기 하고, 나의 재산은 모두 이 아들 것입니다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은, '저는 이런 재산과 보물을 구할 마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많은 보고(寶庫)가 저절로 제것으로 되고 말았습니다'고 되뇌이며, 일찍이 느끼지 못했던 커다란 기쁨을 느꼈습니다.  이것이《법하경》일곱개의 비유중에 '장자궁자의 비유'입니다.   네 명의 성문은 이 이야기를 끝맺고 나서, 세존을 바라보며, 이 대부인 장자는 곧 부처님이며, 이 아들은 우리들입니다---고 말하고, 자신들이 작은 깨달음에 만족해 있던 것을, 여러가지로 마음을 쓰셔서 대승의 가르침까지 이끌어 주신 부처님의 자비와 방편력을, 그 비유담으로 하나하나 열거하여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가섭이 거듭 그것을 계송으로 말하는 것으로 이 품은 끝납니다. 물론 우리들 쪽에서 보면, 이 궁자는 모든 중생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일단 그것이 이 네 명의 성문들이라 보고(그렇지만,항상 그 성문들이 우리 범부의 모습이라 생각하면서), 비유를 실제에 맞추어 설명드리겠습니다.   대장자(부처님)가 아버지라는 것도 모르고, 그 품속에서 뛰쳐나와 인생의 고뇌속을 헤매며 떠돌아 다니는 궁자는, 물론 세상의 중생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단계에 있어서는 네 명의 대성문들도 우리들과 다름없는 범부인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간의 피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자신의 불성을 갖고 있는 줄은 조금도 모르고 고통의 세계를 정처없이 떠돌아 다녀도, 언젠가는 부처님이 계신곳으로 다가서게 됩니다.   이 또한 우리 범부의 모습으로, '저절로 다가서게 된다'는 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귀중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세상은 전적으로 오탁의 악세이지만, 이 글을 읽으면, 우리들의 가슴에는 인간에 대한 희망이 동이 트듯 솟아 올라 아주 밝은 기분이 되지요.   중생은 부처님의 문 앞에 서 있어도 부처님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지 못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저것은 나의 아들이다라고 알아 보신다는 것도 의미 깊은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들 곁에 계십니다. 진리는 어느 곳에나 가득차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부처님을 찾아내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음의 스윗치를 켜면 된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깨달음(진리)으로 끌어 넣으시려 하시지만, 중생의 마음으로서는, 그 가르침의 정도가 너무 높기 때문에, 도저히 자기 같은 자는 가까이 할 수 없다는 비굴한 생각에, 도리어 등을 돌려 떠나고 맙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방편을 사용하시어, 중생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나, 그것보다 조금은 더 나은 두명의 인간(부처님 저택의 하인으로서, 마음의 안정을 얻고 있는 자, 즉 성문과 연각)을 보내시어, 이런 사람들이라면 동료가 될 수 있겠다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거름을 치우는'일을 시키신 것은, 소승의 수행에 따라 번뇌를 없애도록 이끌어 주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부터 이 비유담은 일반 중생의 모습보다는 네 명의 대성문의 수행과정에 꼭 들어 맞는 비유가 되기 때문에, 그것에 맞추어 설명하겠습니다.   이렇게 점차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친하게 한 후, 그대를 나의 아들로 삼겠다 하시면서,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으로 끌어 올리려 하셨지만, 아들 쪽에서는, 여전히 자신과는 관계가 없는 높은 가르침이라고 생각을 굳혀, 부처님과의 사이에 한 선을 긋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20년 남짓이나 소승의 가르침을 꾸준히 수행했던 것입니다.   이쯤 되면, 이미 보통사람으로서는 흉내낼 수 없는 면으로서, 어쨋든 그렇게 오랫동안 싫증내지 않고, 게으름도 피지 않고 화내지도 않고, 동료와 싸움도 하지 않고, 열심히 '거름을 치우고'있었다는 것은 역시 수보리,가전연,가섭,목건련과 같은 대제자들만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드디어 마음의 자유자재를 얻고, 부처님의 가르침도 넓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가르침의 창고를 활짝 여시고는, 자---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친아들이기에, 갖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얼마든지 가져도 좋다는 암시였으나, 아직까지 자신은 고용인이라 생각합니다. 아직 비굴한 정신이 벗겨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지배인(부처님의 제자)으로서는 부족이 없고, 훌륭한 근무태도(부처님 대신 설법을 하여도 정말 훌륭하였다)였지만, 그 재산이 모두 자신의 것이라고는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전히 이승(二乘)의 근성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부처님이 입멸하시기 직전에《법화경》을 설하시며, '부처와 중생은 부모와 자식지간이다. 모든 중생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대선언을 함에 이르러, 비로소 '아, 그랬구나'하는 놀람과 동시에 생각지도 않았던 재산과 보물(부처님의 깨달음)이 자신의 것으로 된 것을 알고, 대단히 기뻐하였습니다.   이것이, 네 명의 성문의 오랜 수행 과정이며, 또 그것을 가만히 지켜 보시며, 점차로 이끌어 주신 부처님의 자비와 방편력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다행이도 처음부터《법화경》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돌아서 가지 않아도 바로 부처님의 품에 안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그 마음가짐도 이 '신해품'속에서 여러가지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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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성의 집 · borisung.com · 2001년 원본의 메뉴·게시판·사진을 그대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