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성BORISUNG

법화삼부경(法華三部經)의 성립

보리성2002-02-05 13:07조회 6No. 3
법화삼부경(法華三部經)의 성립

 법화삼부경은 《무량의경》,《묘법연화경(법화경)》.《불설관보현보살행법경》의 삼부(三部)를 말합니다.  무량의경(無量義經)  이 중에《무량의경》의 내용은 석존께서,《묘법연화경》의 내용을 설하시기 바로 전에 같은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한 것으로 이것은《묘법연화경》과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경전입니다.  왜냐하면, 이 경전 속에는 석존께서 지금까지 40년 동안 이러이러한 목적으로, 이러이러한 순서에 의해, 이러이러한 설법을 해 왔다고 하는 것이 설해져 있으며, '그러나 아직 진실을 모두 밝혀 놓은 것은 아니다' 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오해해서는 안될 점은, 지금까지 석존께서 진실하지 않은 것을 말씀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설법도 모두 진실임에는 틀림없으나, 아직 진실 중의 진실 '모두' 내 놓지 않았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의 신앙의 정도가 아직 거기까지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가르쳐 주더라도 알 수가 없기에 진실 모두를 완전히 나타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을 남김없이 밝히겠노라' 하시며, 다음 설법에 대한 중요한 약속을 하였습니다.  물론, 그 다음에 설법하신 것은 다름아닌《법화경》으로서, 《무량의경》을 읽지 않으면, 석존 일생의 모든 설법 중에《법화경》의 위치, 다시 말해서《법화경》의 고귀함을 확실히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무량의경》라고 하는 것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깊은 의미를 가진 가르침' 이라는 뜻입니다만, 이 설법 중에 그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깊은 뜻 가진 가르침은 오직 하나의 진리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 설해져 있습니다. 그 하나의 진리라고 하는 것은 '무상'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만, 그것에 관해서는 상세하게 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정확히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그것의 해결을 볼 수 있겠는가 하면, 다음에 설하여질 《법화경》에서 입니다. 《법화경》에는 그것을 빠짐없이 설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많은 가르침은 요약해 보면 이 《법화경》이 설하는 진리로 되돌아가게 된다는 것. 석존 일생의 설법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가르침을 여기에 분명하게 밝히고 계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무량의경》은 《법화경》을 설하기 위한 전제로 《법화경》과는 불가분의 관계의 경전이며, 《법화경》도 이 《무량의경》으로부터 들어 가야만 진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하는 관계 때문에, 《법화경》의 개경(開經)이라고 불리우는 것입니다.《무량의경》은 '덕행품(德行品)', '설법품(設法品)', '십공덕품(十功德品)' 의 3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품이라고 하는 것은 종류라든가, 구분이라든가, 부분이라고 하는 의미이며, 현대 서적에서 씌어지고 있는 장(章)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이 덕행품을 《무량의경》의 '서분(序分)' 이라고 하고, 설법품을 '정종분(正宗分)' 십공덕품을 '유통분(流通分)'이라고 하나, 이러한 분류 방법은 다른 경전과도 유사한 것이므로 여기서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서분(序分),정종분(正宗分),유통분(流通分)  '서분'이란 그 경전이 언제, 어디에서, 어떠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해졌는가, 또 왜 그 경전을 설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그리고 그 경전에는 어떤 의미가 설하여져 있는가 하는 개요 등이 씌어져 있는 부분으로 다음의 정종분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정종분'이란 그 경전의 본론이며, 중심이 되는 의미를 가진 부분입니다. '유통분'은, '정종분'에 씌어진 것을 잘 이해하고 믿고 그리고 몸으로 실행하면 어떤 공덕이 있는가 하는 것을 설명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경을 소중하게 여기고 널리 세상에 전하라, 그리고 그러한 노력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러이러한 가호가 있다고 하는 것이 설해진 부분입니다.  다음으로,《묘법연화경》은 아래와 같이 28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품 제1방편품 제2 비유품 제3 신해품 제4 약초유품 제5 수기품 제6 화성유품 제7 오백제자수기품 제8 수학무학인기품 제9  법사품 제10 견보탑품 제11 제바달다품 제12 권지품 제13 안락행품 제14  종지용출품 제15  여래수량품 제16 분별공덕품 제17 수희공덕품 제18 법사공덕품 제19 상불경보살품 제20 여래신력품 제21 촉루품 제22 약왕보살품 제23 묘음보살품 제24 관세음보살보문품 제25 다라니품 제26 묘장엄본사품 제27 보현보살권발품 제28  이 표제들은 그 장의 내용 일부 혹은 전체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그 의미는 본문을 읽으면 자연히 알게 되는 것이므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또한 이 경전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옛날의 승려나 학자들이 몇 가지 분류 방법을 선택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방법으로는 먼저 전체를 둘로 나누어 서품 제1부터 안락행품 제14까지를 '적문(迹門)', 그 이후를 '본문(本門)' 이라고 하며, 그 '적문'을 각각 '서분' '정종분' '유통분' 으로 나누는 방법입니다. 즉, '적문' 에 있어서는 서품 제1을 '서분', 방편품 제2부터 수학무학인기품 제9까지를 '정종분', 법사품 제10부터 안락행품 제14까지를 '유통분'이라고 합니다.  적문(迹門)과 본문(本門). 적불(迹佛)과 본불(本佛)  또, '본문'에서는 종지용출품 제15 의 전반을 '서분' 그 후반과 여래수량품 제16과 분별공덕품 제17의 전반을 '정종분', 그 이후를 '유통분' 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적문'과 '본문'의 구별입니다.  적문이라는 것은 '적불'의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적불'이란, 이 세상에 실제로 태어나셔서 '수행'의 결과로 부처의 경지에 이르러 80세에 입멸한 '석가모니 세존'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적문'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의 이상적인 경지에 이른 석존께서 자신의 체험을 근본으로 하여 우주의 만물상은 이렇게 되어 있다. 인간은 이러한 것이다, 이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들의 관계는 이러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하는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석존께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올바르게 지니기 위해서는 '지혜'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문'의 가르침의 중심은 '부처님의 지혜'에 있다고 해도 좋겠습니다.  하지만, 여래수량품 제16으로 넘어가면 석존께서는 '나는 끝없는 과거의 아주 옛날부터 계속하여 이 우주의 어떤 곳에서도 설법을 계속하여 중생을 교화하고 이끌어 왔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얼핏 생각해 보면 이상해 보이지만 결코 묘한 것은 아닙니다.  부처라고 하는 것은, 바꿔 말하면 '우주()의 진리' 입니다. 태양, 별, 인간, 동물과 식물 그 이외의 모든 것들을 살아가게 하는 근본의 원리, 혹은 우주 근본의 힘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러므로, 이 우주가 생기고 난 이래 부처님은 처음부터 계속 우주 어느 곳에서나 충만해 계십니다. 이러한 의미의 부처를 '본불' 이라고 합니다.  이 본불이 필요에 의해서 인간의 형태를 지니고 이 세상에 출현한 것이 '적불'로서의 석존입니다. 이 양자의 관계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파와 텔레비젼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좋을 것입니다. 방송국으로부터 나오는 전파는 우리들의 주위에 가득 차 있습니다. 눈에도 보이지 않고 귀로도 들리지 않으며 손에도 잡히지 않지만, 우리 주위에 가득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상기의 스위치를 켜고 다이얼을 그 채널의 파장에 맞추기만 하면, 이 집에서나 저 집에서나 화면이 나타나고 음성이 들려 오는 것입니다.  '본불'은 방송국에서 말을 하고 있는 본인에 해당합니다. 더욱이, 그것은 방송국의 스튜디오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파를 타고 우리 주위 어디에도 가득합니다. '적불'이라고 하는 것은 수상기에 나타난 화상과 음성같은 것입니다.전파가 없다면 화상도 음성도 나타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본불'이 없다면 '적불'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반대로 우리들은 수상기에 의존하지 않으면 전파를 화상이나 음성으로 받아 볼 수 없는 것처럼, '적불'에 의하지 않고서는 '본불'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본불'은 무한한 과거로 부터 무한의 미래에까지, 그리고 이 우주의 어디에도 계시는 부처님이기는 하지만, 그 진리에 순응하여 이 세상에 출현한 석존의 가르침을 통해서만 우리들은 비로소 그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본불'과 '적불' 그 어느 쪽이 더 훌륭하다거나 중요하다고 구별할 수 없습니다.  또, 텔레비젼이나 라디오의 전파를 내고 있는 방송국에서는 될 수 있는대로 많은 사람들이 수상기와 수신기의 스윗치를 켜서 받아 주기를 기대하면서 전파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본불'은 언제나 천지(天地)의 만물을 구제하려고 하는 뜻으로서, 우주에 충만해 있는 것입니다. '구제한다'는 의미도 단지 그물로 고기를 건지는 것 같은 '구제'모습이 아니라, 인간이면 인간, 동물이면 동물, 식물이면 식물, 각자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생명을 생생하게 발현(發現)시키고, 더욱 성장하도록 하는 '구제'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본불'은 '우주의 진리'와 다름없는 것이기에 누구라 해도, 무엇이라 하더라도 스윗치를 켜고 자신의 파장을 '우주의 진리'의 파장에 맞추기만 하면, 즉시 그 곳에는 '부처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즉,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덮고 있었던 암흑이 사라져 버리고 생생한 본래의 생명의 빛이 안으로부터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며, 그것이 진정한 '구제'인 것입니다.  이렇게 부처님은 끝없는 과거로부터 끝없는 미래까지 언제나 실제로 존재하시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존재입니다. 그리고 시간과 장소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 상대방의 근기(根機 : 부처님의 설법을 대하는 능력)에 알맞는 방식으로 중생을 구제하려고 준비하고 기다리십니다. 이것이 다름아닌 '본불'의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본불'의 가르침에는 부처님과 인간과의 관계, 다시 말해서 '본불'의 구제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제는 곧 부처님의 자비이기 때문에, 바로 '본문'의 중심이 되는 것은 '부처님의 자비' 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불설관보현보살행법경  《관보현경》은, 석존께서《법화경》의 내용을 설하시고 난 뒤에 비사리국(毗舍離國)의 대림정사(大林精舍)에서 설한 가르침으로서, 《법화경》의 마지막 품인 '보현보살권발품 제28'의 후를 이어 보현보살에 대한 설법을 계속하신 것인데 그 참 뜻은 우리들이 《법화경》의 정신을 몸으로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서의 '참회(慘悔)'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우리들은《법화경》을 읽고, 석존 일대의 설법의 진정한 의미를 터득하고, 수행을 통하여 자신도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용기가 넘쳐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의 실정은 시시각각 괴로움과 고통이 찾아오고, 갖가지 욕망이 계속해서 솟아 나게 되지요. 그래서, 모처럼 가진 새로운 용기도 꺽이기 마련입니다.  '나도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머리 속으로는 알고 있어도, 이러한 마음의 미혹(迷惑)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혼란의 먹구름 속으로 빠져 들어가기가 일쑤입니다.  그 먹구름을 없애는 것이 참회이고, 그 참회의 방법을 가르친 것이 《관보현경》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관보현경》도 《법화경》과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으로,《법화경》의 마무리로서는 꼭 읽어야 할 경전이라는 의미에서 '결경(結經)'이라 불리우고 있습니다. 또, 그 내용상 일반 사람들에게는 '참회경(慘悔經)'이라고도 불리웁니다.  그러면, 먼저'개경'인 《무량의경》부터 순서에 의하여 해설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장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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