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성BORISUNG

설법품 제 2(說法品第二) ①

보리성2002-02-15 13:06조회 3No. 5
설법품 제 2(說法品第二)

  이 품은, 제목과 같이 부처님의 설법에 대해서 기술되어 있습니다.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고나서 이러한 순서로 이러한 목적으로 법을 설하였다고 말씀하신다. 이 법이라는 것은 제각기 다양하게 설해졌지만, 근본의 진리는 오직 하나였으며, 이 하나의 법으로 부터 무량(셀수 없이 많은)의 법이 생겨나는 것을 석존께서 설하신 장이 바로 이 설법품으로,《무량의경》전체의 본론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한편, 대장엄보살은 부처님을 칭송하는 것을 끝마치고 난 후,세존을 향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꼭 여쭈어 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들어 주시겠습니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세존께서는 '좋습니다.아주 좋은 때에 물어 주었습니다.지금 묻지 않으면 그 기회는 없을 것입니다.나는 얼마 안 있어 이 세상을 떠나려 하기 때문에, 나중에 의문이 남아서는 안됩니다.무엇이든지 물어 보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대장엄보살과 다른 보살들은 목소리를 합하여,'대승의 수행을 하는 자가 곧바로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선 어떠한 가르침의 수행을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세존은, '여기에 하나의 훌륭한 가르침이 있습니다.그것은『무량의』라는 이름의 가르침입니다. 보살이 이 법문을 배운다면, 부처님의 깨달음에 잘 이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 가르침을 배우려고 한다면, 먼저 일체 만물은 얼핏 보기에 한결같이 똑같은 것이 없으며 또 시시각각 변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실은 그 본래의 성질과 모습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꿰뚫어 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시 말해서, 일체의 사물은 본래 차별을 초월하여(공(空))영원히 변화하지 않고 대조화를 이루고 있다(적(寂))고 하는 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꿰뚫어 보지 않으면 안됩니다'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육취(六趣:육도(六道)) 이어서 세존께서는, '중생은 그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자기본위로 생각하고 이것은 손해를 보았다. 이것은 이익이라고 제멋대로 타산을 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좋지 못한 마음이 생겨 여섯 가지 고통의 세계를 빙글빙글 맴도는 것입니다'라고 설하고 계십니다. 이 여섯 가지 고통의 세계(육취 혹은 육도)라는 것은,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수라(修羅), 인간(人間), 천상(天上)의 여섯 가지 입니다만, 이것은 인간의 마음속의 상태을 말한것과 동시에 인간을 중심으로한 세계의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먼저 여기서는 전자(前者)에 대하여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지옥'이란 마음이 노여움에 휩싸여 있는 상태입니다. 분노로 미쳐 있을 때는 모든것이 적으로 보입니다. 부부싸움을 하면, 싸움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그릇이나 접시 등도 미워져서 깨버리곤 합니다. 그러나, 그릇이나 접시를 깨거나 상대를 때리거나 하여도 상대를 물리친 것은 아닙니다. 가장 괴로운 사람은 화가 나 있는 본인입니다. 그러한 상태를 지옥이라고 합니다.   '아귀'란 탐욕스러운 마음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상태입니다. 탐욕의 마음이 강하면 그 갖고 싶은 것을 아무리 많이 얻을 수 있어도 또 갖고 싶고 또 다시 탐을 내곤 하여 끝이 날 줄 모릅니다. 돈이나 물질뿐만이 아닙니다. 명예에 대한 탐욕도 있고 인간의 애정에 대한 탐욕도 있습니다. 이렇게 끝없이 욕심을 내어도 만족하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귀입니다.   '축생'이라는 것은 지혜가 전혀 없는 상태입니다. 어리석음을 의미합니다. 사물의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오직 본능대로 앞뒤를 가리지 않고, 하고 싶은대로 하는 상태가 축생입니다.   '수라'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자기 본위대로 자신의 형편에만 맞게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이런 마음이 된다면 반드시 서로 으르렁 거리게 됩니다. 또 대립이 생겨 싸우고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수라장'이라는 것은 격렬한 전쟁의 상황을 형용하는 말입니다만, 실로 이기심과 이기심이 보기 싫은 싸움을 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이것이 '수라'입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이상의 네 가지 마음을 가지고는 있지만, 양심에 의해서 그것을 어느 정도 억제하여 막바지로 치닫는 일이 없는 상태입니다. 문자 그대로 범부인 보통 '인간'의 상태입니다.   '천상'이라는 것은 환희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처님의 깨달음에 의해서 얻은 진정한 즐거움,즉 변함없는 즐거움은 아닙니다. 그것은 육체와 감정의 즐거움,다시 말해서, 미혹속에서의 즐거움이기에,문제가 발생하면 금방 지옥도나, 아귀도나,수라도등에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다만 가상(잠시)의 기쁨입니다. 유정천(有頂天)이라는 말은 바로 이 상태를 말합니다.   이 경우, '천'이라는 곳은 괴로움도 걱정도 없는 곳이지만, 진정한 깨달음을 얻지 않고서는 그런곳에 있어도 결코 마음이 만족하지 못합니다.   억만장자가 되어 대궐가 같은 저택에서 살고 많은 하인을 부리는 신분이 되면, 아무 고생이 없을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 보통입니다만, 실제로 그렇치만은 않습니다. 또 만일 흔히 말하는 극락이라는 곳이 있어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거리기만하는 세계가 있다고 하여도 얼마 동안 생활하다 보면 따분해져 어찌할 바 모르게 되고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틀림없이 생기게 됩니다.'천'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상태인 것입니다.   이렇게,인간의 마음속에는 여섯 가지의 세계가 번갈아가며 일어납니다.   이러한 상태를 '육도를 윤회(輪廻)한다'라고 합니다. 우리들의 마음이라는 것은, 훌륭한 가르침도 듣지 않고 수행도 하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나 이런 육도를 빙글빙글 돌 뿐, 괴로움과 고민이 그칠 날 없으며, 이것은 누구든지 자기자신을 되돌아 보면 짐작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세존께서는 보살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습니다.   '이렇게 육취(육도)를 윤회하고 있는 중생을 보면,보살들은 대자비의 마음을 일으켜서 그 세계로부터 중생을 구해 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일체의 만물(법)을 깊이 알아야 합니다. 그 법을 깊이 알게 되면, 이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생(生))하는 것도 저절로 알게 됩니다. 또, 그 일은 잠시나마 변하지 않고 지속 될 것이다(주(住))는 것도 알게 됩니다.또한 일체의 사물이 변해가는 모양(이(異))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좋은 일,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나는 이치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물에 대한 이치를 잘 알게 되면, 일체의 제법(諸法:이세상의 일체의 사물)은『한 순간도 머무름이 없다』,즉 한 순간도 원래의 모양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변화해 가는 것이다라고 하는 통찰력이 생깁니다.   이러한 통찰력이 생기게 되면,중생 한 사람,한 사람의 근기와 습성과 욕망을 마치 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잘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의 습성이나 욕망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여러가지 종류가 있고 또 제각기 다른 소원이 있기 때문에,그것에 대한 설법도 셀 수 없을 만큼 여러가지(무량)로 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설법의 방법이 무량하기 때문에, 그에 따라서 가르침의 내용(의(義))도 무량해야 합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셀 수 없이 많은 가르침도 또한 그 근본은 오직 하나의 법으로부터 생겨난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진리입니다. 그러면, 진리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든 사물의 차별을 초월한 본성(무상(無相))입니다. 모든 사물은 불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평등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진리인 것입니다.사물의 실상(진정한 모습)인 것입니다. 보살여러분, 이 진실을 깨달음으로 해서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자비라는 것은 반드시 분명한 공덕이 있어서,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주고 나아가서 즐거움을 제공해 줍니다. 그러기에, 이 『무량의』법문을 배우면 곧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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