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성BORISUNG

설법품 제 2(說法品第二) ②

보리성2002-02-17 11:56조회 4No. 6
설법품 제 2(說法品第二)

  부처님께서 이렇게 설하시자, 대장엄보살은 거듭해서 질문을 하였습니다.   '부처님이 설하신 것을 저희들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일반 사람들이 잘 이해를 하지 못하여 방황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서 여쭙겠습니다.   여래께서는 깨달음을 얻은 후에, 40여년간 언제나 중생을 위해서 네 가지의 것(사상(四相))의 의(義)을 설해 주셨습니다.또,『인생은 고통의 세계라는 것(고(苦)의 의(義)),』『모든 사물은 차별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차별을 넘어선,저편에 있는 평등의 모습을 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공(空)의 의(義))』,『이 세상에는 언제나 똑같은 상태로 지속되는 것은 없으며,모든것은 변화한다는 것(무상(無常))』,『이 세상은 혼자서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작은 자아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무아(無我))』에 대하여 설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또 일체 사물의 진정한 모습을 여러가지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여러가지 단계의 깨달음을 얻고, 보살이 되고 싶다는 마음(보리심)을 일으켜, 마침내 보살의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여래께서는 지금까지 40여년간 똑같은 것을 설하고 계신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점점 깊은 가르침을 설해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흐름이 일반 대중에게는 확실히 알기가 어렵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부디 설명을 붙여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렇게 여쭙자 세존께서는, '잘 물어 주었습니다. 당신이 자기자신만의 깨달음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 중생을 위해서 부처님이 설하는 대승의 가르침의 깊은 의미를 물어본 것은 진정한 대자대비인 것입니다. 매우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면, 선남자여 나는 일찍이 보리수 밑에 앉아서 깨달음을 얻었지만, 깨달음을 얻은 부처의 눈을 가지고 일체의 법을 보니 모든 사물은 말로는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중생은 습관이나 욕망에 있어서 사람에 따라 모두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에 따른 수단(방편력)을 사용하여 여러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40여년간 설법을 계속하여 왔지만, 아직 깊고 깊은 진실까지는 다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에 따라 이해의 정도의 차이가 있어 누구든지 곧 바로 부처의 깨달음에까지 이르지는 못하였던 것입니다.   법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의 미혹을 깨끗이 씻어 주는 물과 같은 것이지만, 물이라 하여도 우물의 물, 호수의 물, 강물, 바닷물 등 여러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법도 역시 그렇기 때문에, 똑 같은 내용을 설하고 있는 것 같지만, 처음의 설법과 나중의 설법에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처음으로 녹야원에서 5명의 제자를 위해 법을 설할 때도,『인간을 포함한 일체의 사물에는 겉으로는 차별이 있는 것 같지만 그 근본에는 차별이 없는 평등한 것이 있어, 표면이 아무리 변화하여도 깊은 곳에서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라고 설하였고, 그 이후 중반에 여기저기서 많은 비구와 보살들에게 십이인연, 육바라밀(六波羅蜜)이라는 가르침을 설했을 때에도 똑같은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대승무량의(大乘無量義)의 가르침을 설하는데도 똑같은 것을 말했습니다.   이 세 가지는 말은 같지만, 의미의 함축에 차이가 있습니다. 함축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중생의 이해에도 차이가 생깁니다. 이해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깨달음의 정도에도 차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것은 제가 최초에 녹야원에서 사제(四諦)의 가르침을 설했을 때, 또 그 이후 중반에 십이인연의 가르침을 설했을 때, 그 다음에『방등십이부(方等十二部)』와 그 밖의 가르침을 설했을 때, 각각의 가르침을 들었던 사람들의 교화의 결과를 보면 잘 알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저는 처음 오직 한 가지의 진리를 말해 왔습니다.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부처님들이 똑같습니다. 그러나, 근본의 진리는 오직 하나라고 하지만, 중생 한사람 한사람이 구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그것에 알맞는 가르침을 설하기 때문에, 부처라고 하는 존재는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중생 앞에 나타나 셀 수 없이 많은 형태의 활동을 보이고, 셀 수 없이 많은 가르침을 설하는 것입니다.   부처의 이 경지는 참으로 심오하고 불가사의한 경지로서, 이승(二乘: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이라는 뜻으로, 성문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귀로 듣고, 그 들은 것을 반복하여 익히는 것에 의해 어느 정도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 즉 학습주의의 수행자를 가르키며, 연각이란 독각(獨覺)이라고도 하는데 여러가지 사건을 연(緣)으로 해서 무상을 느끼고 세상과 떨어져 생활을 하며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 즉 체험주의의 수행자를 가르킴)등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수행자의 최고의 경지에 이른 보살이라 하더라도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단지 부처님만이 아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설하고 있는 무량의의 가르침에 의해서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할 것을 목표로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실로 이 가르침은 진실되고 올바르고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것입니다. 또한 다른 여러 부처님들도 깊이 수호해 주시기 때문에, 이것을 진정으로 수행하는 사람은 어떠한 방해에도 굴하는 일이 없으며, 어떠한 경우의 변화에도 용기를 잃어버리는 일도 없으며, 그 어떤 그릇된 생각에도 휘말리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대승의 수행을 하는 사람은 이 심심무상(甚深無上)의《무량의경》을 배우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하시고나자,천지도 감동하여 진동하고 이 세상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여러가지 아름다운 광경을 나타내어, 부처님을 비롯하여 보살, 연각, 성문,대중을 칭송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많은 보살들이 이 《무량의경》에 설해져 있는 가르침을 확실히 이해함에 따라 마음이 차분하게 안정이 되고, 또 많은 보살들이 다라니문(陀羅尼門)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다라니문 이라는 것은, '수많은 인간을 인도하고 나쁜 일을 방지하며 좋은 행동을 일으키는 힘'을 말합니다.   또 비구,비구니, 우바이,우바새, 그 이외의 참석자들도 각자의 경지에 따라 깨달음을 얻고, 모두가'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게으름없이 그 가르침을 널리 전파하여 부처님의 경지까지 도달하고 싶다'는 뜻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목록

보리성의 집 · borisung.com · 2001년 원본의 메뉴·게시판·사진을 그대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