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성BORISUNG

가족이야기

보리성2001-11-12 22:49조회 6No. 2

가족 이야기

 내 신랑 26세 내 나이 25세에 우리는 結婚을 했지요 ! 그러니 이제 36년 세월을 엮어 온 것 같네요...

 우리는 동성동본에, 신랑은 학교를 졸업한지 얼마되지도 않아 (그땐) 온당한 직업도 없었고. 양가 부모 승낙 받기란 더더구나 까마득한 일이었지만, 신랑의 노력 끝에 그래도 시부모님이 한 생각 앞서가는 분들이셨든지 시집 허락은 떨어졌지만 내 친정 아버진 끝내 참석을 거부하셨지요...!!

 청첩장엔 통영 어느 예식장이었는데.... 도착해서 보니 시아버님이 다니시는 활터 마당에 야외 예식장이 되어있었지요.? 내 시어머님은 너무나 생활적인 분이셔서....  화려한 꽃 장식은커녕 신랑 친구가 이 산 저 산 휘저으며 끊어온 야생화 한 다발을 안고, 삼촌 손을 잡고 내 디딘 그 걸음이 그야말로 苦海 속으로 였던가? 지금에 와서 보면 희열?의 바다 속으로 였을까??? 그리고 신혼여행은 가족과 함께 배를 타고 한산도 한 바퀴를 돈것이다 ~~~!!!  진짜 가족얘길 해야겠네. 그때 시아버님 연세가 49세,시어머님이46세,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는 팽팽한 연륜에, 환경에..... 시어머님의 기세는 아무도 못 말려.....  상업을 하셨는데, 성품이 자상하신 시아버님 아래로 식구는 모두 열둘!!! 맨 아래 5섯살로부터 시작해서 8살로 시누이 둘, 11세 시동생으로 해서 14세 16세 21세로해 신랑까지 머슴애 5섯 .점원 식모해서..... 현관문 관리하기가 하도 번거로워 생각해 낸 꾀가 번호로 신고하기~ 남편은 들어서면서 1번, 나는 1-1번, 다음2,3,4,5,6,7...  많고도 많던 일들...내 삶은 넋잃은 생활의 연속이었다. '내 눈알은, 내가 생각해도 영락없는 죽은 생선 눈동자 바로 그것과 다를 것이 없으렸다?' 라고 주문처럼 중얼거렸으니..  내 친정은 오빠와 나 남매 뿐이어서,.. 너무나도 급격한 환경의 변화에 부딛힌 삶에 대한 두려움에서 인지... 회의와 갈등에서 인지...  네 손가락으로 니 눈 찔렀네...하시던 귓전을 때리는 이모님의 말씀. 종종 음미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잠깐 그때만의 현실 도피일 뿐이고... 要는 '어떻게 해야 내가 내속의 문제에 대한 회답을 열 것인가?'가 시급한 채찍이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내가 내게 제기한 세가지 제안. 아니 실행의 파일을 입력시켰다 함이 맞겠다.  *지금 이 시간 이후부터 시댁 식구 앞에 붙은시 자는 떼어내어 버린다.  *내 창자(심지)는 집안에선 걸어두고 나갈 때만 찾는다.  *내가 연연할 친정은 때가 올 때 까진 없는 것이다.  세가지를 버리고, 그날 이후 지금까지 그 몇배의 마음의 여유를 얻었는지 모른다. 다 내 동생이고 내 식구니 무얼 꺼리낄 것인가!!!  그리고 .다들 구김살 없는 새 들이 되어 잘들 지저귀고 산다..  다만 식구들이다 모여 시끌뻑적한 자리 등뒤엔 언제나 흡족한 미소를 머금은체 소리없이 계시던 어머님의 얼굴이 빠지고 없으니 때마다 걸리고 보고싶다...    어머니! 나무 대방광불 화엄경!!!!!  참으로 힘들고 고생스런 인생 역경이었다고 더러는 엄살(?)도 피우지만 그것은 모두가 내 가벼운 삶에 엄청난 무게를 실어준 엄하고도 어려운 스승이었다고, 그래서 나는 지난 삶을 후회하기 보단 내게 숙제 준 모두에게 고마운 스승님이라 칭하고 축원축수 하노라고 어느 날 남편에게 한마디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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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성의 집 · borisung.com · 2001년 원본의 메뉴·게시판·사진을 그대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