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성BORISUNG

일념(一念) 이야기

보리성2002-03-14 14:51조회 16No. 17
일념(一念) 이야기 (釋明正스님)

  어느 해 여름, 행운 유수의 구름과 걸망은 제법 유서(由緖) 깊은 선원에서 머물게 되었다. 죽림으로 뒤덮인 뒷산에서 노선사와 함께 차를 따고 솥에 볶아서 비비고 하며 여름 안거를 시작하였다.   여름 내내 저녁 공양 후에 노사께 차를 얻어마시는데 다선 일미(茶禪一味)라, 차에는 반드시 선담(禪談)이 따르게 마련이다. 정겨운 도우인 통광 스님도 늘 자리를 함께 하였다. 그 날 저녁에도 노사의 법문을 한 차례 듣고 난 뒤, 내가 조가녀(曺家女)이야기를 하였다.   예전에 소산광인(疎山光仁) 선사는 누가 불법을 물으면 나무로 깍은 뱀을 들어보이고는 "이것이 조가의 아낙이다."라고 하였다. 누가 불법을 물어와도 늘 나무 뱀을 들어보이곤 하였는데 이것이 곧 법문이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유가 서려 있었다.   어느 날 고기잡이하는 조씨가 배를 타고 가다가 어떻게 잘못하여 바닷물에 빠져 죽었다. 동행하던 사람이 조씨 부인에게 가서 "당신 남편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슬픈 소식을 전해 주니, 그 부인이 애통해 하며 자기 남편이 빠져 죽은 곳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배를 함께 타고 남편이 빠져 죽은 곳까지 가니, 그 여인은 갑자기 바다에 뛰어들어 이내 흔적도 없이 가라앉았다.   그 후 사흘이 지난 뒤 조가의 여인은 남편의 시체를 껴안고 파도에 떠밀려 왔다. 그 망망 대해의 어디로 가서 죽은 남편을 껴안고 나왔는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소산 스님이 공연히 나무 뱀을 들고 "이것이 조가의 아낙이다."한 것이 아니다. 조가의 아낙이 바다에 뛰어들어 남편의 시체를 껴안고 바닷가에 떠밀린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부인의 혼백이 망망대해 가운데 있는 죽은 남편을 껴안고 떠밀린 뜻을 말한 것이다.   자수(慈受) 선사가 여기에 송을 붙였다.

헤어지는 것은 꽃이 웃는 것만 같지 못하고 이별의 섭섭함은 대가 무심함과 같지 않네. 사람들에게 공연히 조가녀를 말해서 서로 생각하게 하여 병만 깊게 하는구나. 별면불여화유소(別面不如花有笑) 이정난사죽무심(離情難似竹無心) 인인설착조가녀(因人說着曺家女) 인득상사병전심(引得想思病轉深)
  소산 스님의 나무뱀 이야기에 한 방망이를 준 것이다.   내가 이야기를 끝내며 노사께 "참으로 희안하고 불가사의한 이야기가 아닙니까?"하고 말하니 "그렇기는 그렇다만 그보다 더한 이야기가 있다."며 들려준다.   충무에서 있었던 일인데 남편이 고기잡이하는 어부라 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그러니 발 밑이 저승인 셈이다.   그런데 하루는 고기잡이를 하다가 그만 잘못하여 그대로 바다에 빠져 죽고 말았다. 함께 고기잡이하던 사람이 그 부인에게 가서 말하니 그 부인은 아무말도 묻지 않고 바닷가로 가더니 바다로 걸어 들어가버렸다. 며칠이 지난 뒤 그 부인은 죽은 남편을 껴안고 바닷가로 떠밀려 나왔다.   또 하나는 망나니에 관한 이야기다. 옛날에는 역적 모의에 가담하면 구족(九族)을 멸하는데, 어린 아이가 있으면 세상 구경도 못하고 죽는 것이 좀 안쓰럽던지 망나니가 그 어린 아이를 양부처럼 데리고 있다가 나이가 들면 죽인다고 한다.   그런 망나니와 아이가 있었다. 함께 살면 나름대로 정이 들게 마련이다. 자라면서 아이는 어렴풋이 이 양부의 손에 죽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양부에게 졸랐다.   "아버지."   "왜?"   "나 죽이지 말어, 응?"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 집행일이 다가오고   "아버지, 나 죽이지 말어, 응?"   "그럼, 이렇게 하자. 내가 칼을 막 휘두르며 춤을 출 때, 네가 나를 똑바로 보고 있다가 내가 눈을 찡긋 할테니까 그 때 도망가거라."   이렇게 단단히 약속을 하고 그 날을 맞았다. 망나니가 칼을 휘두르다가 눈을 찡긋 하자, 아이는 이때다 하고 도망쳤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밤낮으로 도망쳐서 만주까지 갔다.   아이는 어떤 집에 몸을 의탁하여 살다가 그 집 딸한테 장가가서 아이까지 낳고 재미있게 살다가, 자기를 살려준 망나니 아버지가 보고 싶은 생각이 나서 비단 한 필을 말에 싣고 찾아갔다.   "아버님, 그 동안 어떻게 사셨습니까?"   하며 반가운 인사를 하자 망나니는   "네가 누구냐?"   "아, 그 때 저를 살려 주셔서 이렇게 인사를 하러 오지 않았습니까?"   "아, 그래. 그런데 그 때 내가 너를 죽였는데 이상도 하다."   망나니의 말이 끝나자 마자 그 아이는 그만 흐물흐물해지더니 차츰 연기가 걷히듯 사라졌다.   "어때? 조가녀 이야기보다 더 신비하지 않은가?"하며 노사는 웃으신다. 정말 신비스런 유체이탈(幽體離脫)의 이야기이다.   이렇듯 우리가 산다는 것, 우리의 살림살이는 이 일념이 꾸려가는 것이다.   춘원 이광수 선생이 폐결핵으로 거의 사경을 헤맬 때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광능 내 봉선사 운허 스님을 찾아갔다. 두 분은 사촌 간이다.   춘원은 책상 위에『법화경』「관세음보살 보문품」이 있기에 무심코 읽었다. 그 때 춘원은 "아무리 어려운 액난을 당하고 또 고치기 힘든 불치병이라도 관세음보살만 일념으로 생각하면 해결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구절을 보았다.   그리하여 살아날 수 있다는 그 일념이 뿜어대는 생명의 에너지에 의해 스러져 가던 춘원의 생명은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춘원은 뒷날『춘우관음』이라는 수필을 남겼다. 일념으로 한 곳에 집중할 때 거기서 가히 생각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이 솟는 것이다.   다음은 경허 화상의 선게
문 밖에 복사꽃 오얏꽃 일이 많아서 떨기마다 옛 부처 마음 붉게 토하누나. 문전도리환다사(門前桃李還多事) 만타토홍고불심(萬朶吐紅古佛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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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성의 집 · borisung.com · 2001년 원본의 메뉴·게시판·사진을 그대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