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 소를 먹이다(牧牛)
'소를 먹인다'함은 동중(動中) 공부로서 우리의 일상 생활 선의 면목이다.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앞 생각이 일어나면 무심한 가운데 뒷 생각이 상응(相應)함이 있다.
간혹 역경에 부딪치면 아견(我見)과 치우친 생각의 찌꺼기 같은 망상이 일어나는 수가 있다. 소의 콧구멍을 뚫어서 고삐로 끄나 소와 의기가 투합해야 한다. 독서를 할 때에는 독서 삼매에 푹 빠져야 하고 일을 할 때에는 일에 성실하여야 한다. 소는 소의 본래 야성이 있어서 번뇌망상의 티끌 경계에 달아나기를 좋아하니 채찍으로 다스려야 한다.
길들이다(馴伏)
녹양 그늘 아래 옛 시냇가에
놓아먹이고 거두는 것 자연스러워
날 저물어 푸른 구름 방초 언덕에
목동은 오고 가도 고삐 끌 일 전혀 없네.
제6. 소를 타고 본분의 집에 돌아오다(騎牛歸家)
무심히 소의 등에 타고 유유히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오다.
무심한 사람이 무심한 소를 타고 실상무상(實相無相)의 고향집에 돌아오니 가을 물은 긴 하늘에 맞닿은 심경이다. 한 곡조 불고 또한 가락 노래 부르니 우주의 근원에 사무쳐 천지의 태극에 메아리 침이요, 사람과 소가 둘이면서 둘이 아니니, 둘 아님의 오묘한 경지이다.
걸림없다(無碍)
노지(露地)에서 편히 자니 뜻이 자유로워
채찍질 하는데 힘들지 않으니 정말 편하네
산동은 푸른 솔 밑에 앉아
한 곡조 부르는 이 즐거움이라니.
제7. 소는 잊고 사람만 있네(忘牛存人)
본분의 소를 타고 집에 돌아오니 소도 필요없다. 천지를 배안에 거두어 들이는 좌선이요.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의 경지이다. 우주에 해가 둘일 수 없고 건곤(乾坤)에 다만 한 사람뿐이다.
『법화경』에도 무이무삼(無二無三)을 보였다. 모든 미혹함을 해소하면 진리가 홀로 드러난다. 모두에게 본래 갖추어져 있는 불광(佛光)이 동서 남북 상하 사유 온통 시방 세계에 빛나고, 구원(久遠)의 부처님이 여실하게 솟아난 경계이다. 동(動)중에 정(靜)이 있고 바쁜 중에 한가로움이 있어 오매합일(寤寐合一)의 경지이다.
소가 없으니 채찍과 고삐가 쓸데없고, 삼간 초가집에서 공안이나 염불이 도무지 제목조차 쓸데없고 그저 자연스럽고 한가할 따름이다.
되는데로 형편따라(任運)
버들 늘어진 언덕에 봄물결 석양이 비치고
맑은 연기 속에 방초가 우거졌네.
시장하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며 형편따라 지내네.
바위 위에 산동 깊은 잠에 빠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