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 소와 사람 모두 잊다(人牛俱忘)
미계(迷界)로부터 해탈을 자랑스럽게 여겨도 그것은 깨달음에 집착한 것이다. 통밑이 휑하게 빠져 미혹함과 깨달음, 범부와 성현이 둘이 아니라는 것까지 잊어야 소와 사람을 모두 잊는 경계이다.
채찍ㆍ고삐 ㆍ사람ㆍ 소 등등 모두 사라진 경지이다.
피부탈락진 유유일진실(皮膚脫落盡 唯有一眞實)이라, 덕지덕지 붙어 있는 딱지가 다 떨어지고 껍질 벗어서 어서 이렇게 되어야 한다.
서로 잊다(相忘)
흰구름 항상 흰구름 속에 있듯이
사람도 무심이요 소 또한 그렇다네.
달이 흰구름 뚫으니 구름 그림자가 희고
흰구름에 밝은 달이 동서로 한가롭네.
제9. 근원으로 돌아오다(反本還源)
『법화경』에 이르기를, "이 법이 법위(法位)에 머물러서 세간상(世間相)이 항상 머문다(是法住法位 世間相常住)"하였고, 소동파(蘇東坡) 시에 이르기를 "여산의 안개비 절강의 조수를 한번 가보지 못해서 한이 되더니 가서 보니 별거 없네. 여산의 안개비 절강의 조수일뿐!(廬山煙雨浙江潮未到千般恨不消 到得歸來無別事 廬山廬山煙雨浙江潮)"이라 하였다. 선구(禪句)에는 무일물중무진장(無一物中無盡藏)이라, 없는 가운데 다 있다는 뜻이다. 꽃도 있고 달도 있고 누대도 있어서 보려고 하면 다 있다.
크게 한번 죽는 데서 사는 길이 있고 근원으로 돌아가는 정토가 있다. 반야의 지혜눈을 뜨면 세상법과 불법이 둘이 아닌 '산은 산 물은 물'의 진공모유 경지에 도달한다.
홀로 비추다(獨照)
소가 없으니 목동은 한가로워
한 조각 외로운 구름이 푸른 뫼에 걸쳤네.
박수 치며 밝은 달 아래 노래 불러도
집에 돌아가자면 오히려 한 관문 남았다네.
제10. 시장터에 가서 교화하다
개체(個體)의 활용은 앞에 말한 그대로이다. 불법은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교법이라, 반야바라밀의 지혜는 필연적으로 대자비에 회향함이다.
보살의 정신은 각 개인의 완전한 인격을 지향하며 나아가서 이타(利他)에 있음이다. 그래서 도심지에 나타나서 머리에 재를 쓰고 얼굴에 흙을 칠한 채로 중생을 제도하니, 이것이 포대 화상(布袋和尙)의 경지이다.
백운청산(白雲淸山) 깊은 골, 사립문 암자에서 자수용삼매(自受用三昧)에 깊이 빠진다. 그 경지는 면밀하기에 천성도 살림살이를 감히 엿볼 수 없게 한 뒤, 포대화상과 같이 포대를 둘러메고 표주박과 삿자리 하나로 어촌주사(漁村酒肆)로, 시장터로 이타행에 몰두하는 치성(痴聖)같이 대비심을 내어 유희삼매의 생활을 한다.
얼굴 가득히 선정력으로 웃으며 묘용(妙用)을 얻는 것이 고목에 꽃을 피우는 것과 같다. 범부가 그대로 부처가 되어 함박꽃에 앉고 모란에 활보하니 이것이 곧 저 연꽃이 모든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경지이다.
둘 다 잠들다(雙泯)
사람과 소가 보이지 않고 아득히 자취없네.
차디찬 밝은 달빛 만상은 텅비어
만약 그 가운데 단적한 뜻을 묻는다면
들꽃이 방초 언덕에 함초롬히 피었다 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