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성BORISUNG

경 허 스 님

보리성2002-05-05 11:37조회 14No. 22
경 허 스 님

  경허성우(鏡虛성牛:1849-1912)선사는 근세에 우뚝 솟은 선(禪)의 중흥조이다. 그는 아홉 살에 출가하여 관악산 청계사의 계허(桂虛) 스님을 은사로 득도(得度)하였다. 경학에 밝아 23살에 이미 동학사 강원의 젊은 강백으로 그 명성이 드높았다.   경허 스님이 31살 때였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갑자기 내린 폭우를 피하기 위해 가까운 마을로 들어갔다. 그런데 웬일인지 집집마다 문을 굳게 닫아 걸고 도무지 기척이 없었다. 남의 집 처마 밑에서 간신히 비를 피하고 있다가 시체를 메고 지나가는 사람을 만났다.   "마을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여기 계시면 큰일납니다. 지금 이 마을에는 무서운 전염병이 돌아서 살아 남은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 병에 걸리면 누구라도 죽고 말아요."   그 말을 들은 경허 스님은 등골이 오싹하는 두려움을 느꼈다. 금방이라도 병에 걸려서 죽을 것만 같았다. 경전 구절을 수없이 암송하여도 소용이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생사가 일여(一如)하다고 가르쳐 온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스스로 체득하지 못한 진리는 말 장난에 불과한 것이었다. 죽음의 공포로 떨며 밤을 지샜다. 동학사로 돌아온 경허 스님은 곧 강원을 해산하고, 화두를 들고 불철주야 용맹정진을 시작하였다.   삼 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스님들이 점심 공양을 끝내고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한 스님이 '스님이 죽으면 무엇이 될까'하는 말을 꺼냈다. 그 말이 주제가 되어 한창 토론이 벌어지는데, 한 노장 스님이 말했다.   "중이 밥만 축내다가 죽으면 시주자의 집 소가 된다네."   그러자, 나그네인 한 거사가 말을 받았다.   "소가 되어도 콧구멍 없는 소가 된답니다."   '콧구멍 없는 소(無鼻孔)'   경허 스님은 그 말을 듣고 홀연히 깨쳤다. 그 후 범어사에서 선원을 개설하여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해인사 조실. 송광사 조실. 등을 거치면서 만공(滿空), 혜월(慧月), 수월(水月)선사 등 훌륭한 제자들을 길러내었다.   그러다 말년에는 조실을 박차고 나가 행적을 감추고 떠돌아 다녔다. 일제 하의 암울한 시기였던 1912년 갑산에서 입적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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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성의 집 · borisung.com · 2001년 원본의 메뉴·게시판·사진을 그대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