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성BORISUNG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경봉 스님①

보리성2002-05-28 23:31조회 10No. 23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釋明正스님)

  내가 출가하던 50년대 말에는 빈대가 참으로 많아서 간혹 낮잠을 잘 때면 빈대가 퇴침에서 기어나와 물지 않으면 천정에서 떨어져서 무는데, 빈대에게 물리면 따끔거릴 뿐만 아니라 빈대 특유의 비린내 까지 코로 스민다. 안 물려 본 사람은 모른다.   경봉 스님께서 반평생(1927~1982)을 넘게 기거 하시던 삼소굴(三笑窟) 벽에 오래오래 걸려 있어서 빈대 똥까지 드문드문 묻어 있는 좌우명이 있다.

5ㆍ6ㆍ4ㆍ3 등의 산만한 숫자가 어찌 1ㆍ2의 실로 다하기 어려움과 같겠는가. 몇 줄기 구름빛은 산봉우리로 피어 오르고 시냇물 소리는 난간에서 들린다. 고운 것은 미워하고 싫은 것은 즐거워하도록 노력하련다. 큰 활용은 미간조차 꿈쩍 않는 것 야반삼경에 촛불 춤을 볼지어다. (할 말이 있는 이는 10분 이내로 하고 나가도록) 오육사삼불득류(五六四三不得類) 기동일이실난궁(豈同一二實難窮) 기반운색출봉정(幾般雲色出峰頂) 일양계성낙남전(一樣溪聲落襤前) 애진불애희(愛嗔不愛喜) 야반삼경견촉무(夜半三更見燭舞) (담화인십분이내언지(談話人十分以內言之))

  나는 스님을 시봉하면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이 좌우명과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 때마다 헤이해지는 마음의 고삐를 다잡게 만드는 것은, 맨 아래 괄호하고 덧붙여 놓은 "할 말이 있는 이는 십 분 이내로 하고 나가라."는 말이었다.   큰스님께서는 언제나 느긋하신 것 같아도 시간을 아끼셨다.   석두화상(石頭和尙)『참동계』의 끝구절에도 이런 말이 있다.

삼가 참선하는 분들께 권하노니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게나. 근백참현인(謹白參玄人) 광음막허도(光陰莫虛度)

  두분 노장님들 말씀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도대체 시간을 허비하고는 아무 것도 못 해낸다. 무엇을 하는 사람이든 시간을 아까워해야 겠다.   스님의 좌우명에서 보듯 역시 인성(人性)에 있어서 가장 큰 일은 애증의 갈등인가 보다. 애증, 미추, 선악등 이변견(二邊見)의 양극단에서 완전히 자유자재 하여 미세조장(微細組障)까지 사라진 경지를 선문에서는 흰 연꽃에 비유한다. 『신심명』(信心銘)의 승찬(僧璨) 스님도 이렇게 설했다.
지극한 도는 어려울 것이 없으니 오직 꺼리는 것은 간택하는 일 뿐이다. 다만 미워하고 고와함만 없으면 훤칠하게 명백하리라. 지도무난(至道無難) 유혐간택(唯嫌揀擇) 단막증애(但莫憎愛) 통연명백(洞然明白)

  다만 미워하고 고와함만 없으면 훤칠하게 명명백백한 도인이 된다고 하였다.   부처님께서도 사랑하고 미워하여 취하고 버리는 증애 취사(憎愛取捨)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평등성지(平等性智)를 얻는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 증애 취사의 양 극단으로 치닫지 않으면 모든 병이 없어진다고 하셨다. 20여 년 전 겨울의 일이다. 안거 중에 나는 아우가 신병으로 요절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때 나는 속세의 인연을 끊고 행운유수로 돌아다니다가 보살펴 주어야 할 동기간의 책임을 등한시했기 때문이라는 슬픔과 거기에 동반한 죄책감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 안거도 채우지 못하고 흡사 중음신(中陰身: 사람이 죽어서 다음에 환생하기 까지 떠도는 정신의 몸)처럼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다.   취사 선택과 애증의 갈등을 없이 하라는 말은 수행이 모자라는 보통 중생에게는 흡사 지상에서 땅을 붙이지 말고 살라는 신기루와도 같은 말이다.   하지만 그 곳을 향해 가는 것이 싯타르타 태자나 선재 동자의 이정표요, 모든 수행인들의 취향(趣向)이며 구경(究竟)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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