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성BORISUNG

무념[無念],무상[無相],무주...

보리성2001-11-04 22:25조회 1No. 14

  무념, 무상, 무주???  스스로 머뭄 없는 본마음[本心]을 알고 스스로 모습없는 본성품[本性]을 보면 곧 차별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단박 계합함과 점차로 닦아감의 거짓 이름을 세운 것이다.  선지식이여, 나의 이 법문(法門)은 위로부터 내려오면서 먼저 생각 없음[無念]으로 실천의 뼈대[宗]를 삼고, 모습 없음[無相]으로 실천의 바탕[體]을 삼으며, 머뭄 없음[無住]으로 실천의 뿌리[本]를 삼는다.  모습 없음[無相]이란 모습에서 모습 떠남이며[於相離相],생각 없음[無念]이란 생각에서 생각 없음이다[於念無念].그리고 머뭄 없음[無住]이란 사람의 본성품[本性]이 세간의 선과 악, 고움과 미움 나아가서는 원수거나 친함에 대해서 그리고 말로 상처주거나 속이고 다툴 때 그 모두를 공(空)으로 삼아 갚아 해칠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생각 생각 속에 앞의 경계를 생각하지 않음[不思前境]이다.  만약 앞 생각과 지금의 생각, 뒷 생각이 생각 생각 서로 이어져 끊어지지 않으면 얽혀 묶임이라 하고, 모든 법에 대해서 생각 생각 머물지 않으면[於法不住]곧 묶임 없음이니, 이것이 바로 머뭄 없으므로 실천의 뿌리를 삼는 것이다.  선지식이여, 밖으로 모든 모습 떠나면 모습 없음이라 하고, 모습을 떠날 수 있으면 삶의 본 바탕이 깨끗해 지니[法體淸淨],이것이 바로 모습 없음으로 실천의 바탕을 삼는 것이다.  선지식이여, 모든 객관 경계 위에 마음이 물들지 않음을 생각 없음이라 하니, 그것은 스스로의 생각 위에서 늘 모든 경계를 떠나며 모든 경계 위에서 물든 마음 내지 않음이다. 만약 다만 백 가지 것 생각하지 않고 생각을 다해 없애버리려 할 땐 생각이 끊어지면 곧 죽어 다른 곳에 태어날 것이니 이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참된 삶의 길 배우는 자는 깊이 이를 생각해야 한다.  만약 참된 법의 뜻[法意]을 알지 못하여 스스로 그르침은 오히려 그렇다 할 수 있지만, 다시 다른 사람에게 권하게 되면 스스로 헤매어 보지 못할 뿐더러 부처님의 경전까지 비방하게 된다. 그러므로 생각 없음[無念]을 세워 실천의 뼈대[宗]를 삼는 것이다.  선지식이여, 왜 생각 없음[無念]을 세워 실천의 뼈대[宗]를 삼는가? 다만 입으로만 참성품 봄을 말하기 때문에 헤매는 사람들은 객관 경계[境]위에 물든 생각이 있으며, 생각 위에 곧 삿된 견해를 일으켜 온갖 번뇌와 허위의식이 이로부터 생겨난다.  머뭄없는 자기 성품[自性]이 본래 한 법도 얻을 것이 없는데, 만약 얻는 바가 있어서 망녕되이 화(禍)와 복(福)을 이야기 한다면 이것이 바로 번뇌 티끌인 삿된 견해인 것이다. 그러므로 단박 깨쳐 들어가는 이 진리의 문[法門]은 생각 없음[無念]을 세워 실천의 뼈대를 삼는 것이다.  선지식이여, 생각 없음[無]이란 무엇이 없다는 것이며, 생각 함[念]은 무엇을 생각한다는 것인가? 없음이란 두 모습이 없다[無二相]는 것이니, 모든 번뇌 티끌인 허위의식이 없음이다. 그리고 생각함은 참되고 한결같은 본성품[眞如本性]을 생각한다는 것이니, 참되고 한결같음[眞如]은 바로 생각의 머뭄없는 바탕[念之體]이요, 생각은 바로 참되고 한결같음의 살아 움직이는 쓰임[用]이다.  참되고 한결같은 자기 성품[眞如自性]이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지 눈이나 귀, 코, 혀가 능히 생각을 내는 것이 아니다. 참되고 한결같음에 공덕의 성품이 갖춰 있으므로[眞如有性]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참되고 한결같은 성품이 없다면 눈과 귀, 빛깔과 소리는 바로 그 자리에서 무너지게 될 것이다.  선지식이여, 참되고 한결같은 자기 성품[眞如自性]이 생각을 일으키니, 인식주체[六根]가 비록 보고 듣고 깨달아 알지만, 만 가지 경계[六境]에 물들지 않으며 참성품이 늘 자재한 것이다[眞性自在]. 그러므로 경은 '능히 모든 존재의 모습[法相]을 잘 분별하되 으뜸가는 진리의 뜻[第一義]에서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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