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성BORISUNG

*모습 없는 삼귀의계[無相三歸...

보리성2001-11-04 23:22조회 1No. 18

   모습 없는 삼귀의계[無相三歸依戒]  선지식이여, 이제 네 가지 큰 서원을 발하였으니 다시 선지식에게 모습 없는 삼귀의계[無相三歸依戒]를 주겠다.  선지식이여, 깨달아 두 가지 갖춘 분[佛]께 귀의하며, 올바라 욕심 떠난 법[法]에 귀의하며, 깨끗하여 무리 가운데 높은 이[僧]께 귀의할 것이니, 오늘부터는 깨달음으로 스승 삼아 다시 삿된 마[邪魔]와 바깥 길 걷는 자[外道]들에 귀의하지 말고 자기 성품의 삼보[自性三寶]로써 늘 스스로 증명하라.  선지식에게 권하여 자기 성품의 삼보께 귀의케 하니,붓다란 깨달음이며 법이란 바름이고 승가란 깨끗함이다.  스스로의 마음이 깨달음에 귀의하면 삿된 헤매임이 생겨나지 않고, 욕심을 줄이고 만족함을 알아 재물과 탐욕을 떠날 수 있게 되니, 이것을 복과 지혜 두 가지 갖춘 분[兩足尊]이라 한다.  스스로의 마음이 바름에 귀의하면 생각 생각 삿된 견해가 없어지고, 삿된 견해가 없으므로 너와 나를 다투어 높은 체 함도 없고 애욕의 집착도 없으니, 이것을 욕심 떠난 묘한 법[離欲尊]이라 한다.  스스로의 마음이 깨끗함에 귀의하면 온갖 번뇌 티끌과 애욕의 세계에 자신의 생활이 물들어 집착하지 않게 되니, 이것을 무리 가운데 높은이[衆中尊]라 한다.  만약 이러한 행을 닦으면 이것이 스스로 귀의하는 것인데, 범부는 알지 못하고 낮부터 밤이 되도록 삼귀의계를 받는다. 만약 밖의 부처님께 귀의한다고 말하면 부처님은 어느 곳에 계시는가? 만약 밖으로 부처님을 볼 수 없다면 어느 곳에 의지하여 돌아갈 것인가? 말이 도리어 허망하게 된다.  선지식이여, 각기 스스로 살피어 그 마음을 잘못 쓰지 마라. 경의 글에 분명히 '스스로의 부처님께 귀의한다'고 말씀했지 '다른 부처님께 귀의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으니, 스스로의 부처님께 의지하지 않으면 의지할 곳이 없다.  이제 이미 스스로 깨쳤으니 각기 반드시 자기 마음의 삼보에 귀의하여 안으로 생활의 중심[心性]을 고르게 하고 밖으로 다른 사람을 공경하면 이것이 스스로 귀의함이다.  선지식이여, 이미 스스로의 삼보에 귀의하였으니, 각각 마음을 가다듬으라. 내가 한 바탕에 세 가지 몸[一體三身]인 자기 성품의 부처님을 말하여 그대들이 세 가지 몸의 부처님을 보아 자신의 참 성품을 스스로 깨닫도록 하겠다. 모두 나의 말을 따라 하라.
스스로의 몸 가운데 깨끗하신 법신(法身)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스스로의 몸 가운데 원만하신 보신(報身)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스스로의 몸 가운데 천백억의 화신(化身)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선지식이여, 몸은 바로 집이니 여기에 돌아간다고는 말할 수 없으니, 세 가지 몸의 부처님은 자신의 참섬품 가운데 있다. 세상사람에게 다 있지만 스스로의 마음이 어리석으므로 안의 성품을 못보고, 밖으로 세 가지 몸의 여래를 찾아서 스스로의 몸 가운데 세 가지 몸의 부처님이 있는 줄 보지 못한다.  그대들은 내 말을 들으라. 그대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몸 가운데에서 자신의 참성품에 세 가지 몸의 부처님이 있음을 보도록 하겠다. 이 세 가지 몸의 부처님은 자신의 생활[自性]을 따라 생겨남이요 밖에서 얻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깨끗한 법신의 부처님이라 하는가?  세상 사람의 성품이 본래 깨끗하여 만 가지 법이 본래 깨끗한 자기 성품[自性]따라 생겨나니, 모든 악한 일을 헤아리면 착한 행이 생겨나 이러한 여러 법이 자신의 성품 가운데 있다.  그것은 마치 하늘이 늘 맑고 해와 달이 늘 밝으나 뜬구름이 덮으면 위는 밝지만 아래는 어두워 진다. 문득 바람이 불어 구름 흩어지면 위 아래가 함께 밝아져 만 가지 것이 모두 나타나는 것과 같으니, 세상사람의 생활이 늘 들떠 있는 것도 저 하늘의 구름과 같다.  선지식이여, 지(智)는 해와 같고 혜(慧)는 달과 같으니, 지혜가 늘 밝지만 밖으로 경계를 집착하면 자기 생각의 뜬구름이 자신의 성품을 덮어버려 밝게 빛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만약 선지식을 만나 참되고 바른 법을 들으면 스스로 헤매어 허망함을 없애고 안과 밖이 밝게 사무치므로[內外明徹]자신의 성품 가운데 만 가지 법이 모두 나타나니, 성품을 본 사람도 또한 이와 같다. 이것을 깨끗한 법신의 부처님이라 하니, 선지식이여 스스로의 마음으로 자신의 참성품에 돌아가면 이것이 참 부처님께 귀의함이다.  스스로 귀의한다는 것은 곧 자기 생활 가운데 착하지 못한 마음, 시새워 미워하는 마음, 교만한 마음, 나를 내세우는 마음, 헛되이 속이는 마음,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남에게 뻐기는 마음, 삿된 견해, 높은 체 하는 마음과 온갖 때에 좋지 못한 행동 등을 없애버리고 늘 자신의 허물을 스스로 보고 다른 사람의 좋고 나쁜 점을 말하지 않으면 이것이 스스로 귀의함이다. 그리고 반드시 늘 마음을 낮춰 널리 공경을 행하면 곧 참성품을 보아 통달하여 다시 막혀 걸림이 없을 것이니 이것이 스스로 귀의함이다.  무엇을 원만하신 보신의 부처님이라 하는가?  비유하면 한 등이 천년의 어둠을 없앨 수 있듯이 한 지혜가 만년의 어리석음을 없앨 수 있으니, 이미 지나간 일 얻을 수 없으므로 지나간 앞 일 생각하지 말고 오지 않은 뒷일 생각지 않아서 생각 생각 두렷이 밝으면 스스로 본성품을 보게 된다.  선과 악이 비록 다르지만 그 본성품은 둘이 없으니 둘없는 모습을 실다운 성품[實性]이라 한다. 둘 없는 실다운 성품 가운데서 선과 악에 물들지 않으면 이것을 원만하신 보신의 부처님이라 한다.  자신의 생활속에서 한 생각 악을 일으키면 만겁의 착한 씨앗을 없애고, 자신의 생활 속에서 한 생각 착함을 일으키면 간지스강 모래수 같은 악이 다함을 얻어 곧바로 위 없는 보리에 이르게되니, 생각 생각 스스로 보아 반야의 근본 생각[本念]잃지 않으면 그것을 보신이라 한다.  무엇을 천백억 화신의 부처님이라 하는가?  만약 만 가지 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성품[性]이 본래 허공과 같지만, 한 생각 헤아리면 이것을 변화라 한다. 악한 일 헤아려 생각하면 변화하여 지옥되고, 착한 일 헤아려 생각하면 변화하여 천당되며, 독으로 해치면 변화하여 용과 뱀이 되고, 자비로우면 변화하여 보살이 되며, 지혜로우면 변화하여 높은 곳이 되고, 어리석으면 변화하여 낮은 곳이 된다.  자기 성품의 변화가 이처럼 한량없이 많은데, 헤매는 사람은 능히 깨우치지 못하고 생각 생각 악을 일으키며 늘 나쁜 길(惡道)로만 떠돌아 다닌다. 그러나 이제 한 생각 착함을 돌이켜내면 지혜가 곧 생길 것이니, 이것을 자기 성품 속의 천백억 화신 부처님이라 한다.  선지식이여, 법신은 본래 갖춰 있으니 생각 생각 자신의 성품을 스스로 보면 이것이 보신의 부처님이다. 보신을 좇아 헤아려 생각하면 곧 이것이 화신의 부처님이니, 자기 성품의 공덕[自性功德]을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닦으면 이것이 참된 귀의다.  가죽과 살은 몸[色身]이고 몸은 바로 깃드는 집이므로 귀의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 성품 속에 있는 세 가지 몸의 부처님을 깨달으면, 곧 자신의 성품의 부처님[自性佛]을 알게 된다.  나에게 한 모습 없는 노래[無相頌]가 있으니 능히 외워 지니면 말 아래 그대들이 오랜 겁에 쌓은 어리석음의 죄를 한 때에 녹여 없앨 것이다."  노래는 이렇다.
어리석은 이들은 복만을 닦고 참된 도는 생활 속에 닦지 않아서 복을 지음 도라고 말해버리네. 보시하고 섬기는 복 끝이 없지만 마음 속 세 가지 악 원래 짓나니 복을 닦아 죄를 모두 없애려 하나 뒷 세상 복 얻고도 죄가 남으리. 마음 속을 향해 죄의 인연 없애려면 자기 생활 속의 참된 참회가 되니 대승의 참된 참회 문득 깨달아 삿됨을 다 없애고 바름 행하면 죄가 모두 사라져 없어지리라. 진리의 길 배우려면 자성 살피라 그러면 부처님과 한 무리 되니 우리 조사 돈교문의 이 법만 전해 널리 중생 참된 성품 모두 보아서 부처님과 한 몸 되길 원하셨도다. 오는 세상 법신을 찾고자 하면 법의 모습 모두 떠나 마음 씻고서 힘 기울여 스스로 사무쳐 보고 부질없이 그럭 저럭 노닐지 마라. 뒷 생각 갑자기 끊겨 다하면 이 한 생을 쉬어서 마치게 되니 대승법을 깨달아 성품 보려면 경건하고 공손하게 두 손 모으고 지심으로 간절히 법을 구하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이여, 모두 다 이 게송 외어 지니라. 여기 의지해 수행하여 말 아래 성품을 보면 비록 나에게서 천리나 떨어져 있더라도 늘 내 곁에 있는 것과 같지만, 이 말 아래 깨치지 못하면 얼굴을 마주하고 있어도 천리나 떨어져 있는 것이니, 어찌 힘들여 멀리서 올 것 있겠는가. 편안히 잘 가거라.."  자리에서 함께 한 대중이 법을 듣고 깨달음을 열지 않은 자 없었으니, 모두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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