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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달이 게를 듣고... 바야흐로..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글자를 모른다. 경을 가져와 한번 외워 보라. 내가 마땅히 너를 위해 해설해 주겠다."
법달이 큰소리로 경을 외워「비유품(譬喩品)」에 이르니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그치라. 이 경은 원래 붓다가 세상에 오신 인연으로써 종(宗)을 삼는다. 비록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말씀하고 있지만 이것을 넘지 않는다.
무엇이 붓다가 세상에 오신 인연인가? 경에'모든 붓다 세존께서는 오직 한 큰 일을 위해 세상에 출현하신다'고 하셨으니 한 큰일[一大事]이란 붓다의 지견이다.
세상 사람들이 밖으로 헤매어 모습을 집착하고 안으로 헤매어 공(空)을 집착하니, 만약 모습에서 모습을 떠날 수 있고 공에서 공을 떠날 수 있으면 곧 안과 밖으로 헤매지 않게 된다.
만약 이 법을 깨달아 한 생각 지혜의 마음이 열리면 이것이 붓다의 지견을 연 것이다.
붓다란 깨달음이니 나누면 네 가지 문이 있다. 네 가지란 깨달음의 지견을 열고 깨달음의 지견을 보이며.깨달음의 지견을 깨닫게 하고 깨달음의 지견에 들어가게 함이니[開示悟入 覺知見], 만약 깨달음의 지견을 열어 보임을 듣고 곧 깨쳐 들어갈 수 있으면, 깨달음의 지견인 본래의 참성품[本來眞性]이 나타남을 얻게 되니, 너는 삼가 경의 뜻을 잘 못 알지 말라.
경에서 붓다의 지견을 열어 보이고 깨달아 들게 한다고 말한 것을 보고, 이는 붓다의 지견이라 우리들은 깨칠 분수가 없다는 이런 견해를 지으면 이는 경전을 비방하고 붓다를 허물어뜨리는 일이다. 저 분은 이미 붓다이시고 이미 지견을 갖추었는데 무엇을 하러 다시 열 것인가.
네가 이제 마땅히 붓다의 지견을 믿으면 다만 너 스스로의 마음이라 다시 다른 붓다가 없는 것인데, 대개 모든 중생은 스스로 밝은 빛을 가리고 객관경계를 애착하여 밖으로 끄달리고 안으로 시끄러워 내달림을 달게 받는다. 그리하여 저 세존이 수고롭게 삼매에서 일어나 갖가지 간곡한 말씀으로 중생이 편안히 쉬도록 권하게 하였다.
밖을 향해 구하지 않으면 붓다와 더불어 둘이 없으므로 붓다의 지견을 연다고 하신 것이다.
나도 또한 모든 사람에게 자기 마음 가운데서 늘 붓다의 지견을 열라고 권한다. 세상 사람의 마음이 삿되어 어리석음과 헤매임으로 죄를 짓고, 입은 착하나 마음은 악하여 탐내고 성내는 마음, 시새워 미워하는 마음, 속여 아첨하는 마음, 자기만 잘 났다는 마음이 사람을 헤치고 물건을 해친다. 그리하여 스스로 중생의 잘못된 지견을 여니, 만약 마음을 바르게 하여 늘 지혜를 내서 스스로의 마음을 살펴 비추어 악을 그치고 선을 행하면 이것이 스스로 붓다의 지견을 여는 것이다.
너는 반드시 생각 생각 붓다의 지견을 열고 중생의 잘못된 지견을 열지 말라. 붓다의 지견을 열면 곧 세간을 벗어남이요, 중생의 잘못된 지견을 열면 곧 세간에 얽매임이다. 네가 만약 힘들여 외움만을 집착하여 공(功)을 삼고 성과를 삼으면, 설산의 꼬리 긴 소가 제 꼬리 사랑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법달이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뜻 알기만 하면 되지 힘들게 경을 외우지 않아야 합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경에 무슨 허물이 있어서 너의 외움을 가로막겠느냐. 다만 헤매임과 깨달음이 사람에게 있고 손해됨과 이익됨이 자기에 달렸으니, 입으로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면 바로 내가 경을 굴리는 것이요, 입으로만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바로 내가 경에 굴림을 받는 것이다. 나의 게를 들으라."
마음이 헤매임에 법화에 굴리우고
마음이 깨달음에 법화를 굴리도다.
경 외운 지 오래나 참모습 못 밝히면
법화경의 뜻과는 원수집 되고 마네.
생각이 없으면 경 외움이 곧 바르고
생각이 있으면 경 외움이 삿됨 되니
있음 없음 모두 다 헤아리지 않으면
흰소의 큰 수레 길이 끌어 몰아가리라.
법달이 게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슬피 울며 말씀 아래 크게 깨치고 대사께 말했다.
"법달이 실로 여지껏 법화를 굴리지 못하고 법화에 굴리어 왔습니다."
다시 여쭈었다.
"경에 여러 성문승이나 보살까지라도 모두 함께 생각 다해 헤아려도 붓다의 지혜를 가늠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범부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마음만 개치게 하면 곧 붓다의 지견이라 하시니, 스스로 높은 근기가 아니고서는 의심하거나 비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또 경에 세 수레를 말씀했는데 양, 사슴, 소수레와 흰 소수레를 어떻게 구별해야 합니까? 화상께서는 다시 열어 보여주십시요."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경의 뜻이 분명한데 네가 스스로 헤매어 저버리고 있다. 모든 삼승의 사람들이 붓다의 지혜를 가늠하지 못하는 것은 그 병통이 따져 헤아리는 데 있다. 억지로 저들이 생각을 다해 함께 미루어 가게 되면 더욱 더 아득히 멀어질 뿐이다.
붓다는 본래 범부를 위해 말씀하시지 붓다를 위하여 말씀하시지 않는다. 이 이치를 만약 기꺼이 믿지 못하는 자에 대해서는 저가 자리에서 물러나는 데로 두니, 그는 흰 소의 수레[白牛車]에 앉은 채 다시 문 밖에 세 수레를 찾고 있는 줄 아주 알지 못한다.
하물며 경의 글 가운데 너희에게 분명히 '오직 하나인 불승[一佛乘:하나뿐인 붓다의 수레]이 있을 뿐 다른 수레인 이승(二乘),삼승(三乘)이 없다'고 하셨고, 나아가서는 '셀 수 없는 방편과 갖가지 인연, 비유의 말씀들이 모두 하나인 불승을 위함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너는 어찌 깨우치지 못하는가? 세 수레는 거짓[假]이니 어리석던 옛 때[昔時]를 위하기 때문이며, 일승인 흰 소의 수레는 진실[實]하니 깨달은 지금의 때[今時]를 위하기 때문이다. 다만 너에게 거짓을 버리고 진실에 돌아가도록 가르치지만[去假歸實]진실에 돌아간 뒤에는 진실 또한 이름이 없다. 있는 바 보물과 재산이 다 너에게 속하고 네가 마음대로 받아 쓸 수 있는 것인 줄 마땅히 알아서, 다시는 아버지라는 생각 짓지 않고 아들이라는 생각도 짓지 않으며, 또한 쓴다는 생각도 없으면 이것을『법화경』을 지님이라 말한다. 또한 이것이 겁을 좇아 겁에 이르도록 손에 책을 놓지 않고 낮부터 밤에 이르도록 외우지 않는 때가 없음이다."
법달이 깨우쳐 주심을 입고 기뻐 뛰며 게로써 찬탄했다.
법화경을 삼천부 읽어 외움이
조계의 한 귀절에 다 없어졌네.
부처님이 나신 뜻 못 밝힌다면
오랜 생의 미친 뜻 어찌 쉬리오.
양과 사슴,소의 수레 방편 베풀어
처음과 가운데와 끝이 다 좋은
한 맛의 바른 법 잘 드날리었네.
뉘라 알리 삼계의 불난 집 속이
원래부터 진리의 왕이라는 것을.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오늘부터 바야흐로 경을 외우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다."
법달이 이로 좇아 깊은 뜻을 알았으면서도 또한 경 외우기를 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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