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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장 돈교법의 호법(護法品)
신룡 원년 상원일(上元日)에 측천황후와 중종(中宗)이 조서를 보내어 말했다.
"짐이 혜안, 신수 두 큰 스님을 청하여 궁중에서 모시고 공양하며, 만 가지 기틀[萬機]로 나라일을 하는 틈에 매양 일승을 탐구 하였는데, 두 대사가 사양하며 이렇게 추천하였습니다.
'남방에 혜능선사가 계시는데, 가만히 인(忍)대사의 가사와 법을 받고 부처님 심인(心印)을 전해 받았으니 그 분을 청하여 물으십시요.'
이제 내시 설간(薛簡)을 보내어 조서를 전하고 모시기를 청하오니, 바라건대 스님께서는 자비로 살피시어 빨리 서울로 올라와 주십시요."
조사께서는 표(表)를 올리어 병으로 사양하시며 숲 속에서 삶을 마치기를 원하셨다.
설간이 여쭈었다.
"서울의 선덕들이 다 말씀하시기를 '도를 알려고 하거든 반드시 좌선하여 정(定)을 익혀라. 선정을 인하지 않고 해탈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라고 하시는데, 스님께서 설하시는 법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조사가 말씀하셨다.
"바른 삶의 길[道]은 바른 마음으로 말미암아 깨치는 것이니 어찌 앉는 데 있겠느냐! 경에 말씀하시되 '만약 여래를 앉는다거나 눕는다거나 말한다면 이것은 삿된 도를 행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여래는 좇아 온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없기 때문이다' 라고 하셨다. 생겨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는 것이 여래의 청정한 선[淸淨禪]이요, 모든 법이 공적한 것이 여래의 청정한 자리[淸淨坐]라 끝내는 깨침[證]도 없거니 어찌 하물며 앉음이 있겠는가."
설간이 말씀드렸다.
"제자가 서울로 돌아가면 주상께서 반드시 물으실 것이니 바라건대 스님께서는 자비로써 심요를 가르쳐 주십시요. 그리하여 제자가 양궁께 전해 올리고 또한 서울에 있는 도를 배우려는 모든 사람에게도 말하여 마치 한 등불이 수천 등불을 불붙이듯 어두운 것이 다 밝아져 밝고 밝음이 다함이 없게 하여 주십시요."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도에는 밝음과 어두움이 없다. 밝음과 어두움은 이것이 서로 엇바뀌어 없어지는[代謝]뜻이니, 밝고 밝음이 다함이 없다고 하더라도 역시 다함이 있는 것이니, 서로 상대하여 그 이름을 세운 까닭이다. 이에『정명경』은 '법은 견줄 바가 없으니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한다."
설간이 여쭈었다.
"밝음은 지혜를 비유하고 어두움은 번뇌를 비유하니, 수도하는 사람이 만약 지혜로 번뇌를 비춰 깨뜨리지 않으면, 비롯없는 나고 죽음의 굴레를 무엇을 의지하여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번뇌가 곧 보리라 둘이 없고 다름도 없다. 만약 그대의 말과 같이 지혜로써 번뇌를 비추어 깨뜨린다면 이것은 이승의 치우친 견해요, 양수레, 사슴수레등의 낮은 근기인 것이니, 높은 지혜와 큰 근기는 모두 이와 같지 않다."
설간이 말씀드렸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대승의 견해입니까?"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밝음과 밝음 없음을 범부들은 둘로 본다. 그러나 지혜 있는 이는 그 성품이 둘이 아님을 요달하나니, 둘이 아닌 성품이 곧 존재의 실다운 성품[實性]이다.
실다운 성품이라는 것은 범부에 있어도 줄지 않고 현성에 있어도 늘지 아니하며, 번뇌 속에 머물러도 어지럽지 않고 선정 속에 있어도 고요하지 않으며, 끊어짐도 아니고 늘 있음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며, 중간이나 안과 밖에 있지도 않으며, 생겨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아니하여 성품[性]과 모습[相]이 한결같아서 늘 머물러 옮겨가지 않으니[常住不遷]이를 도(道)라고 이름한다."
설간이 말씀드렸다.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생겨나지 않고 없어지지 않음은 외도와 어떻게 다릅니까?"
"외도가 말하는 생겨나지 않고 없어지지 않음이란, 없어짐을 가지고 생겨남을 그치고 생겨남으로써 없어짐을 다시 드러내니, 없어짐이 없어지지 않음과 같고 생겨남을 생겨나지 않음이라 말한다. 내가 말하는 생겨나지 않고 없어지지 않음은 본래 스스로 생겨남이 없으므로 지금 또한 없어짐도 없으니 이 까닭에 외도와 같지 않다.
그대가 만약 심요를 알고자 한다면 다만 온갖 선과 악을 도무지 생각하지 말라. 그러면 자연히 청정한 마음 바탕에 들어가 맑고 늘 고요하여 묘한 작용이 간지스강 모래알과 같을 것이다."
설간이 가르침을 받고 활연히 크게 깨치고 조사께 절하고 하직 한 뒤 대궐로 돌아가 조사의 말씀을 표로 사뢰었다.
그해 9월 3일 조서를 내리어 대사를 이렇게 추켜세워 찬양하였다.
"대사께서 늙고 병들었다 하여 짐의 청을 사양하고. 짐을 위하여 도를 닦으시니 나라의 복밭입니다. 대사의 이런 모습은 정명이 비야리에서 병을 의탁하여 대승을 찬양하고 모든 붓다의 마음을 전하면서 둘 아닌 법을 담론하던 일과 같습니다.
설간이 대사께서 여래지견을 가르쳐 주신 것을 전하니, 짐이 선업을 쌓은[積善]보람과 지난 생에 선근을 심은 인연으로 대사께서 세상에 나오심을 만나 상승을 단박 깨달았으니, 대사의 은혜에 감사하여 머리에 받들어 마지 않습니다."
아울러 마납 가사와 수정 발우를 드리고 또한 소주 자사에게 명하여 절 건물을 고쳐서 꾸미게 하고 대사가 옛날 머무신 곳에 국은사라 이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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