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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장 돈교법을 제자들께 부촉함(付囑品)
조사께서 하루는 문인(門人)인 법해, 지성, 법달, 신회, 지상, 지통, 지철, 지도, 법진, 법여 등을 불러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다른 사람과 같지 않다. 내가 멸도한 후에 각각 한 지방의 스승이 될 것이므로 내 이제 너희들에게 법 설함을 가르쳐서 근본종지를 잃지 않도록 하겠다.
먼저 삼과법문과 움직여 쓰는 데 서른 여섯 가지 상대하는 법[對法]을 들어 말하리니, 나오고 들어감에 두 가지 치우침[兩邊]을 여의고 온갖 법을 설할 때 자기 성품을 여의지 말라.
갑자기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법을 묻거든, 말을 내되 다 두법으로 하여 서로 상대하는 법을 모두 취해서 오고 감이 서로 원인이 되게 하고, 마침내는 두 가지 법을 모두 없애되 다시 갈 곳 마저 없게 하라.
삼과법문(三科法門)이라 하는 것은 음(陰)과 계(界)와 입(入)이다. 음은 바로 오음이니 색(色), 수(受), 상(相), 행(行), 식(識)이 이것이요, 입은 바로 십이입이니 밖으로 여섯 가지 객관대상[六塵]인 빛깔[色],소리[聲],냄새[香],맛[味],닿음[觸],법(法)과 안으로 여섯 가지 문[六門]인 눈[眼],귀[耳],코[鼻],혀[舌],몸[身],뜻[意]이 이것이요, 계는 바로 십팔계니 여섯 가지 객관대상[六識]과 여섯 가지 문[六門]과 여섯 가지 식[六識]이 이것이다.
자신의 성품이 능히 만법을 머금으므로 함장식(含藏識)이라 하는 것이니, 만약 실체적으로 능히 본다는 사량을 일으키면 이것이 전식(轉識)이라, 여섯 가지 식[六識]을 내어 여섯 가지 문[六門]을 나와 여섯 가지 객관경계[六塵]를 보게 된다. 이와 같은 십팔계 모두가 자기 성품으로부터 작용을 일으키므로, 자신의 생활이 만약 삿되면 열여덟 가지 삿됨이 일어나고, 자신의 생활이 만약 바르면 열여덟 가지 바름이 일어난다.
만약 악하게 쓰면 곧 중생의 작용이요, 착하게 쓰면 곧 붓다의 작용이다.
작용은 무엇을 말미암아 이루어지는가? 모습 없는자기 성품[自性]으로 말미암아 대립된 법이 있다. 대립된 법에는 무정물인 바깥 경계에 다섯 가지 대립이 있으니, 하늘은 땅과 더불어 대며, 해는 달과 더불어 대며, 밝음은 어두움과 더불어 대며, 음은 양과 더불어 대며, 물은 불과 더불어 대니, 이것이 다섯 가지 대립이다.
법의 모습[法相]을 밝히는 언어에 열두 가지 대립이 있으니, 말은 법과 더불어 대며, 있음은 없음과 더불어 대며, 빛깔 있음[有色]은 빛깔 없음[無色]과 더불어 대며, 모습 있음[有相]은 모습 없음[無相]과 더불어 대며, 번뇌 있음[有漏]은 번뇌 없음[無漏]과 더불어 대며, 색(色)은 공(空)과 더불어 대며, 움직임은 고요함과 더불어 대며, 맑음은 흐림과 더불어 대며, 범부는 성인과 더불어 대며, 승(僧)은 속(俗)과 더불어 대며, 늙음은 어림과 더불어 대며, 큼은 작음과 더불어 대니, 이것이 열두 가지 대립이다.
또한 자신의 참성품이 작용을 일으킴에 열아홉 가지 대립이 있으니, 긴 것은 짧음과 더불어 대며, 삿됨은 바름과 더불어 대며, 어리석음[癡]은 지혜로움[慧]과 더불어 대며, 어두움[愚]은 슬기로움[智]과 더불어 대며, 어지러움은 고요함과 더불어 대며, 사랑함[慈]은 독함과 더불어 대며, 옳음은 그름과 더불어 대며, 험난함은 평탄함과 더불어 대며, 번뇌는 보리와 더불어 대며, 항상함은 덧없음과 더불어 대며, 슬피 여김은 해침과 더불어 대며, 기쁨은 성냄과 더불어 대며, 줌은 아낌과 더불어 대며, 나아감은 물러섬과 더불어 대며, 생겨남은 없어짐과 더불어 대며, 법신은 색신과 더불어 대며, 화신은 보신과 더불어 대니, 이것이 열아홉 가지 대립이다."
조사께서 말씀을 이으셨다.
"이 서른여섯 가지 마주하는 법을 만약 잘 알아 쓰면 곧 도가 온갖 경에서 가르친 법을 꿰뚫어, 들어가고 나옴에 곧 두 가지 치우침을 여의어 자기 성품을 움직여 쓰며, 사람과 더불어 이야기 함에 밖으로 모습에서 모습 여의며, 안으로 공에서 공을 여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온전히 모습에 집착하면 곧 삿된 견해를 기를 것이며, 만약 온전히 공을 집착하면 곧 무명을 기를 것이다.
공을 집착하는 사람은 경을 비방하면서 바로 문자를 쓰지 않는다 말하나, 이미 문자를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마땅히 말하지도 않아야 한다. 그것은 다만 이 말하는 것도 바로 문자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또 바로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不立]는 두 글자도 또한 문자인 것이니, 대개 이런 사람은 남이 말하는 것을 보고 곧 그를 비방하여 '문자에 집착한다'고 말한다.
너희들은 반드시 알라. 스스로 헤매이는 것은 오히려 그럴 수 있지만 또 부처님 경전까지 비방할 것인가. 반드시 경을 비방하지 말아야 하니 이러한 자는 그 죄장이 헤아릴 수 없다.
만약 밖으로 모습을 집착하여 법을 지어[作法]참됨을 구하거나 또는 널리 도량을 세워 있고 없는 허물과 걱정거리를 말한다면, 이와 같은 사람은 몇 겁을 지내도 참성품을 보지 못할 것이다. 너희들은 다만 법을 듣고 법에 의지하여 수행해서, 백 가지것 생각하지 아니하여 도의 성품에 막혀 걸림이 있게 하지 말라.
만약 바르게 설함 듣고도 닦지 아니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도리어 삿된 생각을 내게 하니, 다만 법에 의지하여 수행하여 모습에 머뭄이 없이 법을 베풀라. 너희들이 만약 바로 깨쳐 이를 의지하여 말하고 이를 의지하여 쓰며, 이를 의지하여 행하고 이를 의지하여 지으면, 곧 근본 종지를 잃지 않을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뜻을 묻되 있음을 물으면 없음으로 대하고, 없음을 물으면 있음으로 대하며, 범부를 물으면 성인으로 대하고, 성인을 물으면 범부로 대하여 두 가지 도가 서로 원인되어 중도의 뜻을 내게 하라. 너희가 이와 같이 한번 물으면 한번 그 물음에 대하여 다른 물음에도 한결같이 이를 의지해 지으면 곧 바른 이치를 잃지 않을 것이다.
설사 어떤 사람이 있어 '무엇이 어두움이냐?'고 묻는다면 '밝음은 바로 인(因)이요, 어두움은 바로 연(緣)이니, 밝음이 없어지면 곧 어두움이다' 라고 답하라. 밝음으로써 어두움을 나타내며 어두움으로써 밝음을 나타내면, 오고 감이 서로 원인 되어 중도의 뜻을 이룰 것이니, 다른 물음에 대하여도 모두 다 이와 같이 하라.
너희들이 뒤에 법을 전할 때에는 이를 의지해 번갈아 서로 가르쳐 주어 종지를 잃지 말라."
조사께서 태극 원년 임자 7월에 문인에게 명하여 신주 국은사에 가서 탑을 세우게 하시고 또한 공사를 서두르도록 하여 이듬해 늦은 여름에 낙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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