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3 /게를 짓고 법을 들어 조사의 인가를 받다.
[원문] 조사께서 하루는 모든 문인을 불러 놓고 말씀하셨다. '모두 오라. 내가 너희들에게 말하겠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나고 죽음의 일이 큰 일인데, 너희들은 날이 지나도록 복밭만을 구할 뿐 나고 죽음의 고통바다에서 벗어나기를 구하지 않는다. 자신의 참모습(自性)에 어리석으면 복도 어떻게 구할 수 있겠는가. 너희들은 각기 가서 스스로 지혜를 보아 자기 본 마음의 반야를 가지고 각기 한 게송을 지어 나에게 가져와 보게 하라. 만약 큰 뜻을 깨달았으면 너희에게 가사와 법을 전하여 제육조를 삼겠다. 불처럼 빨리가서 머뭇거리지 말라. 헤아리면 곧 맞지 않는다. 견성한 사람[見性之人]은 말 아래 바로 보는 것이니, 만약 이와 같은 자는 칼을 휘둘러대는 싸움터에서도 또한 보는 것이다.' 대중이 처분을 받고 물러나 번갈아 서로 말했다. '우리 여러 사람들은 구태여 마음을 밝히고 뜻을 내서 게송을 지을려고 할 것이 없다. 화상에게 바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신수상좌(神秀上座)는 지금 교수사(敎授師)이시니 반드시 이분이 법을 받을 것이다. 우리들이 속여 게송을 짓는 것은 부질없이 힘만 들이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말을 듣고 모두 게송 지으려는 마음을 쉬고 말했다. 우리들은 나중에 신수 스님을 의지할텐데 무엇 때문에 번거롭게 게를 짓겠는가.' 신수는 생각했다. '여러 사람들이 게를 바치지 않는 것은 내가 저들의 교수사 이기 때문이다. 내가 반드시 게를 지어 화상께 바치리라. 게를 바치지 않는다면 화상이 어떻게 내 마음의 견해가 깊고 얕음을 아시겠는가. 내가 게를 바치는 뜻은 법을 구한다면 옳은 것이려니와 조사의 자리를 찾으면 잘못된 것이다. 도리어 범부의 마음과 같으니 성인의 자리를 뺏으려 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그렇지만 게를 바치지 않으면 끝내 법을 얻을 수 없으니 참으로 어렵고 어렵다.' 오조스님이 쓰시는 집앞에 세 칸의 복도가 있는데, 화공 노진을 청하여 능가경변상과 오조혈맥도(五祖血脈圖)를 그려 전해 내려가며 여러 사람에게 공양하게 하였다. 신수는 게를 지은 뒤 게를 바치려고 조사의 방앞에 자주 건너 갔으나 마음이 아득하고 온 몸에 땀이 흘러 바치지 못하고, 앞뒤로 나흘이 지나도록 열세 차례나 건너갔으나 게를 바치지 못했다. 이에 신수는 생각했다. '게송을 바치는 것이 복도 밑에다 써 붙이는 것만 같지 못하겠다. 화상께서 지나다 보시고 홀연히 좋다 하시면 곧 내가 절을 하고 신수가 지었다 말씀드리고, 만약 감당할 수 없다 말씀하면 헛되이 산중에서 몇년을 남의 절만 받았으니 다시 무슨 도를 닦을 것인가.' 그날밤 삼경에 남들이 알지 못하도록 스스로 등을 들고 남쪽 복도벽 사이에 게를 써 자신의 보는 바를 바쳤다. 게송은 이렇다.위『능가사자기』의 기록을 보면 북종(北宗)은 신수선사의 선문만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라, 북지에서 동산법문을 개연(開演)한 여러 선사들의 기풍을 총칭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만 하택이 제기한 달마선종의 정통성 시비에서, 혜능의 돈오선에 대해 점문의 선가풍을 표방한 대표적인 선사가 신수로 규정됨으로 해서, 북종선은 차츰 신수 문하의 선가풍을 정의하는 개념으로 굳어진 것이다. 신수선사는 낙양에 올라가 국사가 되기 전 천태지자선사의 근본도량이며 천태선사가『마하지관』과『법화현의』를 강설한 형주 옥천사에 머물렀으며, 자신의 수행관을 천태 사종삼매(四種三昧)의 하나인 일행삼매(一行三昧)에 의거한다고 말하였으니,『능가사자기』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몸은 바로 깨달음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의 대와 같네.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 티끌 먼지 일어나지 않도록.신수가 게를 쓰고 나서 곧 방에 돌아오니 아무도 몰랐다. 신수가 다시 생각했다. '오조께서 내일 게를 보시고 기뻐하시면 곧 내가 법에 인연이 있음이지만, 감당할 수 없다 말씀하면 이것은 내가 어리석음이라 지난 세상 업의 장애가 무거워 법을 얻을 수 없음이니, 성인의 뜻은 헤아릴 수가 없다.' 방가운데서 이리저리 생각하며 불안하게 앉았다 누웠다 하니 어느새 오경이 되었다. 조사께서는 이미 신수가 문에 들어오지 못하고 자신의 참성품(自性)을 보지 못한 줄 아셨다. 하늘이 밝아 올 때 조사는 노화공을 불러 남쪽 복도벽 사이에 그림을 그리도록 하셨는데, 홀연히 거기 붙은 게송을 보시고 화공에게 말씀하셨다. '그림을 그릴 것이 없다. 수고롭게 너를 멀리서 오게 했구나. 경에 모든 모습이 다 허망하다 했으니, 이 게만 남겨 두어 사람들에게 외어 지니게 하라. 이 게를 의지해 닦으면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큰 이익이 있을 것이다.' 문인들에게 향을 꽂고 예경케 하시며 이 게를 다 외우면 모두 참 성품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므로 문인들이 게를 외우며 모두 훌륭하다고 찬탄하였다. 조사께서 삼경에 신수를 불러 방에 들게 하고 물으셨다. '게는 네가 지었느냐?' 신수는 말했다. '실로 신수가 지은 것입니다. 감히 조사의 자리를 함부로 구함이 아니오니 화상께서는 자비로 보아 주십시요. 제자 에게 적은 지혜라도 있습니까?' 조사는 말씀하셨다. '너가 지은 이 게는 참 성품을 아직 보지 못한 것이다.다만 문 밖에 이르렀을 뿐 문 안에 들지 못했으니, 이런 견해로 위없는 보리를 찾으면 깨쳐 얻을 수 없다. 위없는 보리는 반드시 말 아래 단박 스스로 본 마음을 알고 스스로 본래의 참성품(本性)을 보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생겨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아서 그 어느 때나 생각 생각 만 가지 존재가 막힘 없음을 스스로 보아, 하나가 참됨에 온갖 것이 참되며 만 가지 경계가 스스로 한결 같으리니(萬境如如), 경계에 물듬 없는 한결같은 마음(如如之心)이 바로 참되고 실다움인 것이다. 만약 이렇게 보면 이것이 위없는 보리의 자기모습이다. 너는 가서 하루 이틀 사유하여 다시 한 게송을 지어서 나에게 가져와 보아라. 너의 게가 문에 들어온 것이면 너에게 법과 가사를 부치겠다.' 신수가 절하고 나가서는 며칠이 지나도록 게를 짓지 못하자, 마음이 아득하고 정신이 불안함이 마치 꿈속에 있는 것 같아서 가거나 앉거나 즐겁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이틀이 지나 한 어린 사미승이 방앗간을 지나면서 신수의 게송을 외었다. 혜능이 한번 듣고 본래의 참 성품(本性)을 보지 못한 줄 곧 알았다. 비록 혜능은 가르침을 입지 못했으나 큰 뜻을 일찍 알아챘으므로 어린 사미승에게 물었다. '외우는 것이 무슨 게 입니까?' 어린 스님이 말했다. '너 오랑캐는 모르고 있는가! 대사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상 사람에게는 나고 죽음의 일이 크다. 가사와 법을 전해 부치고자 하니, 문인들로 하여금 게를 지어 보이게 해서 큰 뜻을 깨달았으면 가사와 법을 부쳐서 제육조를 삼으리라.> 이렇게 해서 신수상좌가 남쪽 복도 벽 위에 무상게(無相偈)를 써 붙여서 대사께서 사람들에게 이 게를 외우게 하시고, 이 게를 의지해 닦으면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 해설 * 진리는 모습의 닫혀진 꼴이 아니지만 모습을 떠난 것도 아니므로 가사와 바루로써 법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며, 깨달음은 말이 아니지만 말을 떠나지도 않으므로 게(偈)로써 그 깨달음을 검증해낸다. 다만 가사와 바루로써 불심인(佛心印)을 전한다 함은, 중국불교의 다양한 선 수행의 그룹 사이에서 행해졌던 선에 관한 법통의 대결에서 동산법문의 정통성을 표방하기 위해 세워진 종파의 주장으로 보아야 옳을 것이다. 견성(見性)은『육조단경』에서 깨달음을 표현하는 기본적인 술어이며, 견성한 사람은 진리를 체달한 창조적인 주체를 뜻한다. 이때 성(性)은 원리적이고 실체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언어의 분위기를 안고 있는데, 성(性)이란 불성(佛性)이며 모든 존재의 실상[萬法之實相]이다. 그런데 불성(佛性)이 모습 너머의 절대적인 성품이 아니라, 존재[我]와 존재를 이루는 여러 계기[法]가 모두 공하되 그 공함마저 붙잡아쥘 것 없음[我法二空 所顯眞如]을 뜻한다면, 성품을 본다는『단경』의 표현은 '존재의 실상을 통달함','모든 것이 인연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실로 그렇다 할 자성이 없음을 깨침'으로 보아야 할 것이며, 견성한 사람은 보디사트바(bodhisattva)의 선종적인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신수선사와 혜능선사의 두 게송은 달마 문하의 북종(北宗), 과 남종(南宗), 북종의 점문(漸門)과 남종의 돈교(頓敎)를 가르는 분기점이 된다. 신수선사는 속성이 이(李)씨로서 어려서부터 경사(經史)를 널리 읽었으며, 출가하여 기주 쌍봉산 동산사에서 오조홍인선사가 좌선(坐禪)으로 일삼고 계시는 것을 보고서는 '이 분이 참으로 나의 스승이다(此眞吾師)'라고 찬탄하였다. 스승을 모시고 지내면서 홍인문하 여러 수행자들 가운데 교수사(敎授師)가 되어 대중을 지도하였다. 신수선사는 홍인선사의 십대 제자 가운데 한 분으로 일찍 법을 이은 뒤. 혜능선사가 남지의 소주에서 은둔하고 있던 때 이미 장안에 진출하여 대중교화에 나섰다. 홍인의 문하에서 배출되어 북지(北地)인 장안(長安)과 낙양(洛陽)에서 혜능보다 먼저 교화를 퍼 제도불교(帝都佛敎)를 이룬 대표적인 선사는 신수(神秀), 혜안(慧安), 현색(玄색), 지선(智詵), 법여(法如)선사였으니,『능가사자기』「신수장]은 이렇게 말한다.일곱번째, 당조의 형주 옥천사 대사의 이름은 수(秀)이고, 안주 수산사의 대사의 이름은 색이며, 낙주 숭산 회선사의 대사의 이름은 안(安)이다. 이 세분 큰 스님들은 측천무후 중종(中宗) 예종(睿宗) 등 앞뒤로 3대를 걸쳐 나라의 스승이 된 분들이다.  안주 수산 화상이 찬술한『능가인법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수선사는 속성이 이씨인데, 변주 위씨현 사람이다. 멀리 장강을 돌아다니며 스승을 찾고 도를 사모하였는데, 행각이 기주 쌍봉산 홍인선사의 처소에 이르렀다. 그 곳에서 선법(禪法)을 받아 법의 등불을 전하니, 그 빛은 고요히 비추고 말길이 끊어지고 마음 가는 곳이 사라져 문자로 된 기록을 내지 않았다. 나중 형주 옥천사에 머물다 대족(大足)원년 천자의 부름으로 동도(東都) 낙양에 들어가 천자의 수레를 따라 오고 가며 두 수도에서 법을 가르쳐 몸소 제왕의 스승이 되었다.어느 때 측천무후가 신수선사에게 물었다. "전해받은 법은 어떤 분의 종지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기주의 동산법문을 받았습니다." 측천이 물었다. "어떤 전적에 의지합니까" 선사가 답했다. "『문수설반야경』의 일행삼매에 의지합니다. 이에 측천이 말했다. "만약 도 닦음을 논하면 동산법문을 지나간 것은 없소." 신수선사는 홍인의 문인이므로 위의 말이 곧 참됨을 이루는 것이다.신수선사와 혜능선사가 모두 홍인의 동산법문을 잇고 스승의 부촉을 받은 분들이지만, 두 선사는『단경』의 두 게송에 나타난 종지의 차별상 때문에 하택, 규봉에 의해 신수선(神秀禪)이 점문(漸門)으로 혜능선(慧能禪)이 돈문(頓門)으로 판정된 것 말고도 많은 생활상의 차이와 교화가풍의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다. 위『능가사자기』의 글에 보인 바처럼 신수선사가 홍인 문하를 떠난 뒤, 형주 옥천사에 머물다 낙양에 들어가 제도불교의 중심 역할을 담당한 반면, 혜능은 가난한 홀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 황매산에서 방아를 찧다 홍인의 인가를 받은 뒤, 16년을 숨어 지내다 중국의 변방 소주 땅에서 처음으로 당을 열어[開堂]법을 연설한다. 그러므로 체계적인 교학과 단계적인 수행방법[入道方便]을 의지해 깨달음에 들어가도록 가르치는 신수의 방법론이, 기성의 체계를 의지해서 자신의 불교관을 피력할 수 있었던 그의 생활상을 반영하고 있다면, 혜능의 단박 깨침은 기성의 권위와 체계를 돌파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사상적 지위를 확보할 수 없었던 혜능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 티끌 먼지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는 신수선사의 게송은 '끊임없이 털고 닦으라'는 주장 때문에 하택선사에 의해 '법문은 점문이며 스승으로부터 이어받음은 곁가지[法門是漸 師承是傍]'라고 평가되고 있으나, 그의 게송은 엄밀한 뜻에서 다만 점수(漸修)를 주장하고 있지는 않다. 게송 가운데 '몸은 깨달음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의 대와 같네' 라고 한 앞 귀절은 번뇌가 실로 있지 않은 본각처(本覺處)를 보인 것이고, '때때로 털고 닦으라'고 한 뒤 귀절은 번뇌가 실로 없지 않은 곳에서 일어나는 수증행(修證行)을 보인것이다. 그러므로 신수의 게송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닦을 것 없는 성품[性]과 닦아감[修], 본디 깨쳐 있음[本覺]과 닦아 가야함[始覺]을 함께 보인 게송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신수선사는 중생으로 하여금 번뇌를 조복하지 못하고 헤매이는 모습[住不調伏相]을 깨뜨리도록 하기 위해 '때때로 털고 닦으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번뇌 자체가 실로 일어난 곳이 없으므로 억지로 번뇌를 끊고 열반을 얻으려 하면[住調伏相]새로운 삶의 질곡 속에 떨어지게 되므로 혜능선사는 '불성이 늘 깨끗해서 털고 닦을 것이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보리성의 집 · borisung.com · 2001년 원본의 메뉴·게시판·사진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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