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성BORISUNG

☆해설7/ 제2장 반야의 참뜻을 열어보임[般若品]

보리성2002-01-22 16:27조회 3No. 40
제 2 장 반야의 참뜻을 열어보임[般若品] 1.반야삼매의 바른 길을 바로 보임[直示般若三昧正路] 자리에 올라 대중을 위해 반야법을 열어 보임
[원문]   다음날 위사군이 다시 물으니 대사가 자리에 올라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모두다 마음을 깨끗이 해서 마하반야바라밀다를 생각하라." 다시 말씀하셨다. "선지식이여, 보리반야인 지혜는 세상사람에게 본래 스스로 있는 것인데, 다만 마음이 어리석으므로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반드시 큰 선지식의 가르쳐 이끔을 빌어 참성품을 보아야 한다. 마땅히 알라.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의 불성에는 본래 차별이 없지만, 헤매임과 깨달음이 같지 않음으로 해서[迷悟不同]어리석음이 있고 지혜로움이 있게 된 것이다. 내 이제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해서 그대들이 각기 지혜를 얻도록 하겠다. 지극한 마음으로 잘 들으라. 내가 너희를 위해 설하겠다. 선지식이여, 세상 사람들은 하루내내 입으로 반야를 부르되 자기 생활 속의 반야[自性般若]를 알지 못하니, 마치 밥을 말하지만 배부르지 않은 것과 같다. 입으로만 공함[空]을 말하면 만겁이 지나도 성품을 보지 못하여 끝내 이익 됨이 없게 된다.   * 해설 *  실상(實相)은 모습이 아니지만 모습 아닌 것도 아니므로 모습을 떠나지 않고 실상을 구현하며, 반야(般若)는 말이 아니지만 말 아닌 것도 아니므로 말을 여의지 않고 반야를 발휘한다.  반야가 깨달음의 주체적 표현이라면, 실상은 깨달음의 객관적 표현이며, 언교(言敎)는 깨달음의 살아있는 작용이다. 이 뜻이『반야경』에서는 실상반야, 관조반야, 문자반야로 표현되니 혜능선사가 말한 바 불성(佛性). 진성(眞性). 자성(自性)이 실상반야라면, 보리반야는 관조반야이며, 입으로 부르는 마하반야바라밀의 언구는 문자반야이다.  실상이 모습 없되 허무가 아니므로 신령한 앎이 어둡지 않고[靈知不昧], 신령한 앎이 있되 공하므로 해탈의 작용이 막힘없고, 막힘 없는 해탈의 작용이 머뭄 없으므로 작용 그대로 고요함이 되는 것이니, 실상. 관조. 문자행은 서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하바라밀을 부르고 생각하는 행 가운데 부르는 마음[能念]과 불려지는 문자상[所念]이 함께 공한 줄 알면, 부르는 행 그대로 반야를 쓰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날이 새도록 입으로 반야를 부르되 언어상이 고요한 줄 모르면 자성반야를 알지 못한 자이니, 그는 만겁이 지나도록 성품을 보지 못하여 끝내 이익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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