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선지식이여, 나는 인화상(忍和尙) 계시던 곳에서 한번 듣고 말씀 아래 곧 깨쳐 참되고 한결같은 본성품[眞如本性]을 단박 보았다. 그러므로 이 교법을 유행시켜 바른 길 배우려는 사람들이 단박 보리를 깨쳐 각기 스스로 마음을 살펴 스스로 본성품을 보게 하려 한다. 만약 스스로 깨치지 못하면 반드시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아는 큰 선지식이 바른 길 보여줌을 찾으라.
이 선지식은 큰 인연이 있음이니 곧 뭇 삶들을 교화해 이끌어서 성품을 보도록 함이라. 모든 좋은 법이 이 선지식으로 인해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의 십이부경이 다 사람들 자신의 생활[人性]가운데 본래 스스로 갖추어져 있지만, 능히 스스로 깨치지 못하므로 반드시 선지식의 가르쳐 보임을 구해야 바야흐로 보게 된다.
만약 스스로 깨치는 자는 밖으로 선지식을 구할 것이 없다. 만약 다른 선지식을 의지해야만 해탈할 수 있다고 한결같이 집착하여 말하면 그것도 옳지 않다.
왜 그런가? 자신의 마음속에 선지식이 있어 스스로 깨치는 것인데, 삿되고 어리석은 생각을 일으켜 망녕된 생각으로 인해 뒤바뀌면 비록 밖의 선지식이 가르쳐 준다 해도 깨칠 수 없다. 만약 바르고 참된 반야를 일으켜 살펴 비추면 한 찰나 사이에 망녕된 생각이 모두 사라지니, 만약 자신의 참성품을 알아 한번 깨치면 곧 붓다의 땅[佛地]에 이르게 된다.
* 해설 *
중생의 번뇌 망상이 공한 곳에 지혜와 덕상이 실로 공하지 않음이 바로 진여본성(眞如本性)이다. 그러므로 진여본성은 닦아 얻는 것이 아니지만 번뇌 망상에 그냥 머물러서도 진여본성은 구현되지 않는다.
또한 깨달음은 가르쳐주고 배우는 인연의 닫혀진 모습이 아니지만, 인연이 아니면 또한 깨칠 수 없는 것이니, 그 뜻을『법화경』「방편품」은 이렇게 말한다.
여러 모든 부처님 양족존께서는
법에 늘 자성 없음 아시지만
부처 씨앗 인연따라 일어나므로
일승의 가르침 말씀하도다.
諸佛兩足尊 知法常無性
佛種從緣起 是故設一乘
선지식은 번뇌망상에 묶여 있는 중생을 깨달음의 세계에 이끄는 크나큰 인연이다. 수행자의 보리심(菩提心)이 주체적 요인[因]이 되고, 선지식의 가르침이 돕는 조건[緣]이 되어 수행자는 깨달음을 구현하지만, 깨달음의 세계에는 닦는 모습도 닦지 않는 모습도 없고 스승과 제자,가르침과 배움의 모습이 공하다.
곧 수행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깨치지지만, 깨친 그 지혜는 스승 없는 지혜[無師智]이며 스스로 그러한 지혜[自然智]이다. 그러므로 혜능선사는 반드시 선지식에 의지해야 하지만 스스로 깨친 자는 밖으로 선지식을 구할 것이 없다고 말하고, 남악혜사선사는'『묘법연화경』으로 표현된 깨달음의 길은 대승의 단박 깨치는 길이니, 스승 없이 스스로 깨쳐 빨리 부처 이루는 길이다(妙法蓮華經者 大乘頓覺 無師自悟 疾成佛道)'라고 말한다.
선지식은 밖에 있는 대상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마음 속에 있다고 해서도 안된다. 참된 선지식의 모습은, 스승의 가르쳐줌을 배우고 받아들이되 배움의 모습과 가르침의 모습을 떠나며,늘 스승을 의지하되 스승 없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을 때 나의 삶 속에 언제나 드러나는 모습 아닌 모습이다.
선지식은 밖에 없되 밖에 없는 것도 아니며, 선지식은 안에 있되 안에 실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가르침과 배움의 인연을 통해서 스승 없는 지혜를 얻고, 스승 없는 지혜를 통해서만 참된 스승을 볼때 옳게 가르치고 바르게 배우는 길이 삶 속에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