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성BORISUNG

☆해설12/안과 밖이 밝게 사무친 무념의 반야삼매

보리성2002-03-02 11:17조회 4No. 45
1.반야삼매의 바른 길을 바로 보임[直示般若三昧正路] 안과 밖이 밝게 사무친 무념의 반야삼매[內外明徹之無念行]

[원문]   선지식이여, 지혜로 살펴 비추면 안과 밖이 밝게 사무쳐[內外明徹]본래의 머뭄없는 마음[本心]을 알게 된다. 만약 본마음을 알면 본래의 해탈이니 해탈을 얻으면 곧 반야삼매며 곧 생각 없음[無念]이다.   무엇을 생각 없음이라 하는가? 만약 온갖 법을 보더라도 그 마음이 물들어 집착하지 않으면 이것이 생각 없음이다. 쓰면 곧 온갖 곳에 두루하되 또한 온갖 곳에 집착하지 않고, 다만 본래의 머뭄 없는 마음[本心]을 깨끗이 하여 여섯가지 식[六識]으로 여섯 문[六門;六根]을 나오게 하되, 여섯 가지 객관 경계[六塵]에 물듬 없고 섞임 없으며 오고 감이 자유롭고 통해 씀에 막힘이 없으면 곧 반야삼매며 자재한 해탈[自在解脫]이니, 이것을 생각 없는 행[無念行]이라 한다.   만약 백 가지 것을 생각지 않고 마땅히 생각을 끊으려 하면 이것은 법에 묶임[法縛]이니 곧 치우친 견해[邊見]라 한다.   선지식이여, 생각없는 법[無念法]을 깨친 이는 만 가지 법이 다 통하며, 생각없는 법을 깨친 이는 모든 붓다의 경계를 보며, 생각없는 법을 깨친 이는 붓다의 지위에 이른다." * 해설 *   생각에서 생각 없는 무념행(無念行)이 반야삼매(般若三昧)이며 자재해탈(自在解脫)이다. 생각에 생각 있는 생각은 범부의 번뇌망상이요. 백 가지 것을 생각지 않고 생각을 끊어 생각 없음에 머물면 이는 법에 묶임이며, 생각에 생각 없는 참 생각이 삼매며 해탈이다.   지금 생각은 여기 있고, 생각 밖에 저기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일 때 그 생각은 생각의 생각이 아니라 세계인 생각이며 존재인 생각이다. 곧 육식(六識)은 육근(六根), 육경(六境)에 의해 일어나나, 육식일 때 이미 육근. 육경은 육식인 육근. 육경이다.   그러므로 위 원문에서 육식으로 여섯 문을 나오게 한다는 것은 육식 육근을 실체화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 있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연기론 자체의 표현으로 보면 육근. 육경이 있되 공하기 때문에 육식의 연기가 있고, 육식은 연기된 것이므로 머문 바가 없으니, 지금 아는 식(識)은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지만 안과 밖을 떠나지 않는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앎을 없애고 반야를 구해도 옳지 않고, 앎의 실체성에 그냥 주저앉아 반야를 헤아려도 옳지 않다.   오직 반야는 안[內: 六根]으로 얻을 것이 없고 밖[外: 六境]으로 구할 것도 없는 줄 알아서 앎을 앎 아닌 앎으로 굴려씀에 있으니, 앎 아닌 참된 앎을 쓰면 아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붓다의 경계를 보고 붓다의 지위에 이르르니, 이것이 바로 내외명철(內外明徹)한 해탈의 땅이다.   내외명철은 요즈음 실재론적 수행관에 떨어진 치우친 선류들이 주장하듯 안과 밖에 통해 환히 밝은 어떤 경지를 얻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얻을 것도 없고 밖으로 구할 것이 없되 그 구할 것 없고 얻을 것 없음마저 없음을 체달함이다.   이제 얻을 것 있음을 세워 선정을 통해 해탈의 경지에 나아가려는 치우친 선(禪)의 종지[禪定解脫論]와『단경』에서 제시하는 바 생각에서 생각을 떠나고 모습에서 모습을 여의면 생각과 모습을 없애지 않고 서 있는 그 자리[立處]에서 붓다의 땅에 이른다는 돈오의 가르침을 새롭게 되살핌으로써 오늘의 선류(禪流)들은 수행의 바른 길을 옳게 간택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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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성의 집 · borisung.com · 2001년 원본의 메뉴·게시판·사진을 그대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