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성BORISUNG

☆해설16/2.대중이 의심하는 바...

보리성2002-03-29 11:14조회 5No. 50
2.대중이 의심하는 바를 낱낱이 답변하시다[大衆所疑一一答辯] 달마대사가 공덕이 없다 한 뜻을 묻다[問達摩師無功德旨]

  [원문]   위공이 말했다.   "화상의 말씀하신 바가 달마대사의 종지(宗旨)가 아닙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소."   위공이 말했다.   "제자가 듣기에 달마대사께서 처음 양무제를 교화하실 때 무제가 달마께 다음처럼 물은 줄 압니다. '내가 일생에 절을 짓고 여러 사람들을 승려로 만들었으며 이웃에 나누어 주고 재를 배풀었는데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이에 달마께서는 '실로 공덕이 없다'고 하셨습니다.제자가 이 이치를 통달하지 못하오니 화상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요."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실로 공덕이 없는 것이니 옛 성인의 말씀을 의심하지 마시오. 무제는 마음이 삿되어 바른 법을 알지 못했소. 절 짓고 여러 사람들을 승려로 만들며 이웃에 나누어주며 재를 배풀어 주니, 그것은 복 구함이라 말할 수 있으나 복을 가지고 공덕이라 해서는 안되오. 공덕은 법신(法身)가운데 있지 복을 닦음에 있지 않소."   다시 말씀하셨다.   "참성품을 보는 것이 공(功)이요 평등함이 바로 덕(德)이니, 생각 생각 막힘없이 늘 본성품의 진실하고 묘한 작용[本性眞實妙用]보는 것을 공덕이라 하오. 안의 마음을 겸손하게 낮춤이 공이요. 밖으로 예(禮)를 실천하면 바로 덕이며, 자신의 참성품[自性]이 만 가지 법 세워내는 것이 공이요. 마음의 본바탕이 생각을 떠나는 것[心體離念]이 바로 덕이며, 자신의 참성품 떠나지 않음이 공이며, 사물에 응해 쓰되 물들지 않음이 바로 덕이오.   만약 공덕의 법신을 찾으려 하면 여기에 의지해 그 공덕을 지어야 참된 공덕이 되오. 공덕을 닦는 사람이라면 그 마음이 곧 남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늘 널리 공경함을 행하오. 마음이 늘 다른 사람을 가벼이 여기고 나를 내세우는 생각 끊어지지 않으면 스스로 공이 없게 되고, 자신의 생활이 허망하여 진실하지 못하면 스스로 덕이 없게 되니, 이는 나를 내세우는 생각 스스로 커져 늘 모든 이들을 가벼이 여기기 때문이오.   선지식이여, 생각 생각 사이가 없는 것이 공이요, 마음을 평등하고 곧게 쓰는 것이 바로 덕이며, 스스로 불성을 닦는 것이 공이요, 스스로 몸을 닦는 것이 덕이오.   선지식이여, 공덕은 자신의 참성품[自性]안에서 보는 것이요. 널리 나누어 줌과 공양만으로 구하는 바가 아니오. 그러므로 복덕과 공덕은 서로 다른 것이니, 무제가 참 이치를 알지 못하였을 뿐 우리 조사에게 허물 있음이 아닙니다."

 * 해설 *   위자사는 '양무제가 달마대사에게 일생 절 짓고 이웃에 보시한 공덕을 묻자 대사가 공덕이 없다'고 한 뜻에 의문이 있어 혜능선사께 묻는다.   혜능선사는 양무제가 지은 것은 복덕일 뿐 공덕이 아니며, 공덕은 본성의 진실한 묘용[本性眞實妙用]을 보는 것이라 답변한다.   달마선사가 양무제에게 실로 공덕이 없다고 함은 복을 짓고 복 지었다는 집착을 내거나, 복을 짓되 주는 모습, 받는 모습에 집착이 있는 복 지음을 깨기 위해 실로 공덕이 없다 하였다. 그렇다면 공덕은 물질적인 보시나 복덕의 세계를 떠나 있는 것인가.   연기법으로 보면 모든 모습은 연기된 것이라 모습에 모습이 없으므로 모습 아님에도 모습 아니라 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주는 자와 받는 자. 주는 물건에 집착이 있는 보시 또한 존재의 실상에 부합되지 못한 행이지만, 모습 없음[無相]과 생각 없음[無念]을 국집하여 고요함에 주저앉아 있는 것도 참된 공덕의 세계가 아니다.   공덕의 삶은 물질 보시 그대로가 아니지만 물질 보시와 복덕의 세계를 떠나 있는 것도 아니다. 주는 나와 받는 너, 주는 것에 머뭄 없이 주고 받으면 복 지음에 나아가 바로 공덕의 세계이니, 이를『금강경』은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한다(應無所住 行於布施)'고 말하고, 그러한 행을 '머뭄 없는 묘한 행[無住妙行]'이라 한다.   곧 혜능선사가 '자성이 만 가지 법 세워내는 것이 공이요, 마음의 본바탕이 생각을 떠나는 것이 덕'이라 함은 바로 주되 줌이 없고 받되 받음이 없는 보시의 길이요, 복덕과 죄업의 실체가 공한 곳에서 역사와 대중을 위해 지음 없이 복덕을 짓는 보살행을 뜻한다.   그렇다면 모습에 집착하여 자선(慈善)의 행 짓는 것으로 공덕을 삼는 자도 참된 공덕의 삶을 등진 자라 하겠지만, 역사와 대중을 위해 아무런 헌신적인 행이 없이 다만 앉아 있음으로 선(禪)을 삼아 그것으로 공덕이라 말하는 자들도 참된 공덕과는 교섭이 없는 치우친 삶을 사는 자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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