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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21/1.일행삼매 최상승선을...

보리성2002-06-27 14:58조회 5No. 55
제4장 선정과 지혜의 하나됨[定慧品] 1. 선정과 지혜가 하나인 일행삼매[定慧一體一行三昧] 일행삼매 최상승선을 보임[一行三昧最上乘禪]

    [원문]   대사께서 대중에게 가르쳐 보이셨다.   "선지식이여, 일행삼매(一行三昧)란 온갖 곳에서 가고 머물고 앉고 누움에 늘 한결같이 곧은 마음을 행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저『정명경(淨名經)』에 '곧은 마음이 도량이며 곧은 마음이 정토다'라고 한 말씀과 같으니, 마음으로는 굽게 행하고 입으로만 곧음 말하며, 입으로는 일행삼매를 말하고 곧은 마음을 행하지 않는 이러한 잘못 저지르지 말라. 다만 곧은 마음을 행하여 온갖법에 대해 집착두지 말라.   어리석은 사람은 법의 모습[法相]에 집착하고 일행삼매를 다시 집착하여, 늘 앉아 움직이지 않으며 망녕되이 마음 일으키지 않는 것이 일행삼매라고 함부로 말하니, 이런 견해를 짓는 자는 뜻없는 물건[無情物]과 같아서 도리어 참된 삶의 길을 가로막는 인연이 된다.   선지식이여, 도는 반드시 통해 흘러야 하는데 어찌 도리어 막아버릴 것인가. 마음[心]이 법(法)에 머물지 않으면 도가 통해 흐르며, 마음이 만약 법에 머물러 버리면 그것을 스스로 묶임이라 한다.   만약 늘 앉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옳다 말하면 다만 저 사리불이 숲속에 고요히 앉아 있기만 하다 유마힐에게 꾸중 받음과 같을 것이다.   선지식이여, 어떤 사람이 있어서 앉아 마음을 보고 고요함을 살피며[看心觀靜]움직이지 않고 일어나지 않도록[不動不起]가르쳐 여기에 공(功)을 두게 하면, 헤매는 사람들은 알지 못하므로 곧 집착하여 뒤바뀜을 이룬다. 이러한 자들이 무리지어 이처럼 서로 가르치니 크게 잘못된 것인 줄 알아야 한다."

  * 해설 *   본 단에서는 일행삼매(一行三昧)의 참 뜻을 열어 늘 앉아 있음[常坐]만의 형식적인 틀로서 일행삼매를 설명하는 치우친 수행관을 타파한다.   천태선사는 경교에 의지해서 선수행을 네 가지 삼매[四種三昧]로 요약하니, 네 가지 삼매란 상좌삼매(常坐三昧: 늘 앉아서 행하는 좌선삼매), 상행삼매(常行三昧: 늘 다니면서 행하는 염불삼매), 반행반좌삼매(半行半坐三昧: 앉음과 다님을 반반씩 행하는 법화삼매), 비행비좌삼매(非行非坐三昧: 앉음과 다님의 형식에 떨어지지 않는 수자의 삼매)이다.   이 때 상좌삼매인 좌선삼매를 일행삼매(一行三昧)라 하고, 상행삼매를 일상삼매(一相三昧)라 한다. 그러나 앉음이 앉음 아닌 줄 요달하면 앉음을 떠나지 않고 행(行)을 쓰며, 다님이 다님 아닌 줄 알면 다님을 떠나지 않고 앉아 있음이니, 네 가지 삼매는 서로 닫혀진 선 수행법이 아니라, 하나의 형식을 통해서 앉음과 다님, 고요함과 움직임을 모두 부정해서 모두 긍정하는 데[非行非坐 亦行亦坐]그 근본적인 뜻이 있다.   다만 일행삼매의 수행자가 앉아 있음에 떨어져서 생활의 역동성을 잃어버리거나 선(禪)을 앉아 있음의 형식에 갇힌 것으로 볼 때, 유마거사의 꾸짖음이 있게 되고, 혜능선사의 일행삼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있게 된다.   혜능선사는 좌(坐)의 형식에 갇힌 선(禪)의 치우침을 부정하여 일행삼매란 바로 온갖 곳에서 가고 머물고 앉고 누움에 관계없이 늘 한결같이 곧은 마음[一直心]을 쓰는 것이라 정의하고,『유마경』에서 유마힐은 앉아 있는 것으로 수행을 삼는 사리불에게 다음과 같이 경책한다.

 사리불이여 꼭 앉아 있는 것만이 좌선인 것은 아니오. 무릇 좌선이란 삼계에 몸과 뜻을 나타내지 않음이 좌선이며, 멸진정을 일으키지 않고 모든 행동거지를 나타내는 것이 좌선이며, 도법을 버리지 않고 범부의 일을 나타내는 것이 좌선이며, 마음이 안에도 머물지 않고 또한 밖에도 머물지 않는 것이 좌선이며, 모든 견해에 움직이지 않고 삼십칠도품을 수행하는 것이 좌선이며, 번뇌를 끊지 않고 니르바나에 드는 것이 좌선이오.   만약 이와 같이 앉을 수 있는 이라면 부처님께서 인가하십니다.
  위 경문에서 유마힐이 사리불을 꾸짖는 것은 앉아 있음을 집착하여 앉아 있음으로 선(禪)을 삼기 때문이나, 선(禪)의 본질은 좌선의 방편을 떠나 있는 것도 아니니, 일행삼매란 앉음에 갇히지 않되 앉음을 떠나지 않는 좌선의 참모습을 말한다.   그래서 혜능선사는 행하되 앉음을 떠나지 않고 앉되 행함을 떠나지 않는 좌선의 참모습을 행주좌와(行住坐臥)에 관계없이 '곧은 마음을 행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천태선사는『마하지관』에서 일행삼매를 정의하면서, 선(禪)의 지관이란 다만 고요함이거나 앉아 있음이 아니라, 법계의 머뭄 없는 바탕에 하나된 휴식이며 법계의 작용에 하나된 활동이라는 뜻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만 반연을 법계에 묶고[緣卽無緣故]생각을 법계에 하나되게 할 뿐[無念卽念故]이니, 반연을 법계에 묶음을 지(止)라 하고, 생각을 법계에 하나되게 함을 관(觀)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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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성의 집 · borisung.com · 2001년 원본의 메뉴·게시판·사진을 그대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