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성BORISUNG

차와 건강 ②

보리성2002-06-16 23:32조회 5No. 44

茶와 건강 제1절 선조들이 차를 즐겨 마신 이유

   (3) 예술적 흥취와 독서   선비들은 대자연에 묻혀 그 속에서 차를 마시면서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린다든가 음악을 감상하는 등, 예술적 흥취에 빠졌다. 차를 예찬하거나 차를 마시며 지은 선조들의 시나 글이 400편이 넘게 전해진다. 차를 끓여 대접하고 손님(이숭인)에게 시문을 지어 달라고 한 경우도 볼 수 있고, 석 잔의 차를 마시니 시 짓고 싶다고도 했다. 초의(草衣) 스님은 해질녘에 대동강에서 배를 타고「시낭(詩囊:시문의 초벌 원고 넣는 주머니)과 차완(茶椀)이 작은 배 안에 같이 있네」라고 읊었다. 이규보는 차 마시고 흥이 일면 거문고 타고 시를 지었고, 이상적(李尙迪)은「거문고 잔잔히 새 곡조에 접어드니, 차 냄비의 물 끓는 소리 맑게 들린다」고 하였다.   명필로 유명한 한석봉(韓護,1543~1605)은 초가집인「청묘려(淸妙麗)」에서 거문고도 타고 책도 읽고 화로에 불피워 차 끓여 마시며, 흥에 부풀어 신나게 글씨를 썻다고 한다. 추사 김정희는「참선과 차 끓이는 일로 또 한해를 보냈다」고 할 정도로 그의 생활은 차와 선(禪)과 예술로 일관하여 스무 편이 넘는 차시가 전해진다.   고려와 조선의 선비들이 실내에서 차를 마시는 곳은 주로 서당(書堂)이거나 사랑방으로 오늘날의 서재였으므로, 차를 마시고 독서에 몰입하는 것은 일상의 일이었을 것이다. 서경덕(徐敬德)도「차 마시고 옛 책을 뒤적이네」라고 읊었고, 조선 말엽의 화가 이인문(李寅文)의 그림에는「소나무가지 주워 쓴 차 달여 마시고 내키는 대로 주역, 사기(史記), 도연명 시 등을 읽는다」고 쓰여 있다.    (4) 그릇됨을 깨우치고 수신(修身)하게 함   차를 마시면 그릇된 생각을 없애며 나쁜 마음을 물리치고 올바름을 깨우치게 한다고 하였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법을 다루는 사헌부의 관리들이 차를 마시는 의례를 행한 후에 죄를 논하고 기강을 바로 잡은 일이나, 부적에「茶」자를 써 붙이면 나쁜 귀신을 쫓는다고 믿었던 것도 위와 같은 연유로 생각할 수 있다.   이색(李穡)의 아래 시는 그의 차생활이 수신제가(修身齊家)하는 군자가 되게 함을 나타낸다.

  차마신 후 읊음 작은 병에 샘물을 길어 깨어진 솥에 노아(露芽)차를 달이네 귀가 갑작이 밝아지고 코로는 차향을 맡네 갑작이 눈에 가리운 편견이 없어지니 밖으로 보이는 데에 티끌이 없구나 혀로 맛본 후 목으로 내려가니 살과 뼈가 똑발라 비뚤어짐이 없도다 가슴 속 영혼의 마음자리는 밝고 깨끗하니 생각에 그릇됨이 없네 어느 겨를에 천하를 다스리랴 군자는 마땅히 집안을 바르게 해야하리
  이 글에서 이색은 차를 끓여 마시면 귀,코,눈,입,마음의 오관(五官)이 즐겁고, 특히 행동이 아니라 생각에도 그릇됨이 없게 한다고 하였다. 또 차가「나쁜 버릇을 고친다」는 다산 정약용의 글이나,혹은 신위(申緯)가
쓴 차 마시는 엄숙한 때는 속인의 어리석음 깨치기에 알맞고 좋은 때 좋은 장소는 참선하기에 적합하구나
라고 한 내용에서도 차는 자신을 바로 잡아주는 스승일 수도 있음을 뜻한다. 이목이『다부(茶賦)』에서 차는「사람으로 하여금 예를 갖추게 하는 덕(德)을 지녔다」고 한 것도 차가 자연인으로서의 자신을 알게 깨우쳐주고 한걸음 더 나아가 겸손을 가르쳐 준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상적(李尙迪)은 말차의 차유(茶乳)를 따르며,
작은 찻잔에 차를 따르니 천 개의(많은) 차거품이 일어나네 (거품의)둥근 빛은 구슬처럼 흩어지니 하나의 구슬은 부처님 한 분이네
라고 하여 차가 깨우침을 주는 부처와 같다고 하였다. 한편 육우는『다경』에서「차는 맛이 지극히 차서 행실이 한결같고 정성되며 검소의 덕이 있는 사람이 마시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하였다.    (5) 깊은 경지에 이르며 신선(神仙)이 된 것 같음   고려의 차인 이규보의 글에는
타오르는 불에 끓인 향차는 참으로 도(道)의 맛이고 흰 구름과 밝은 달은 곧 가풍이라네 活火香茶眞道味 白雲明月是家風
라고 하여 차의 맛이 도의 맛이라 하였으니 이는 차를 마시면 걸림이 없는 경지에 이름을 뜻하는 것 같다. 고려말의 이연종(李衍宗)은「차를 마셔 깊은 경지에 이른다」고 했고, 추사는 아래와 같이 도의 경지를 시로 읊었다.
생각에 잠겨 고요히 앉아 있노라면 차가 한창 익어 향기가 나기 시작하는듯 하고 신묘한 작용이 일어날 때는 물이 흐르고 꽃이 피듯 하네
  또한 차 마시는 일은 선(禪)의 경지라고 하였다. 추사는 초의에게「명선(茗禪)」이란 글을 써 주었으며, 신위는「차맛이 달큰하게 감돌아 졸음이 오니 이것이 바로 선(禪)이구나」라 하였다. 또 이규보는
비록 늙었으나 손수 샘물을 길어 차 한잔 마시니 바로 참선의 시작이네
라고 하여 차 끓여 마시는 일이 바로 참선임을 뜻했다.   이러한 깊은 경지에 이른 사람을 신선으로 생각하여, 차를 마시니 신선이 되는 것 같다는 내용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래서 차의 이름을 선차(仙茶)라 부르기도 하였다. 정희량(鄭希良)은「간담이 뚫리어 신선과 통하고 동안(童顔)이 된다」고 했으며, 이목(李穆)은「창자가 시원하고 머리가 맑아지며 신선이 되는 것 같다」고 하였다. 초의가 쓴『동다송』20번째에는
메마른 것을 떨치고 어린아이가 되는 신통하고 빠른 효험이 있어 여든 살의 나이에도 얼굴이 복숭아 꽃처럼 예쁘다네
라고 하였고, 박영보(朴永輔)가 초의에게 보낸 글머리에「옛날에는 차를 마시고 신선이 되었으며, 못 되어도 청정(淸淨)한 현사(賢士,어진 선비)는 되었다」고 씌여 있다. 조선 말엽의 빙허각 이씨는『규합총서』2권〈열녀록(烈女錄)〉에서 아래의『다경』〈7.고사(古事)〉에 나오는 차 파는 할머니를「여선(女仙:여신선)」이라 했다.   진나라 원제(元帝,317~22)때에 한 할머니가 있었는데 새벽마다 홀로 차 한 그릇을 들고 장에 가서 팔았다. 장에 온 사람들이 다투어 사는데도 새벽부터 저녁까지 그 그릇은 줄지 아니하였다. 번 돈은 길가의 외롭고 가난한 거지에게 뿌렸다. 사람들이 이를 이상하게 여기니 고을의 법관이 할머니를 옥 안에 가두고 말굴레를 씌어 두었다. 밤이 되자 할머니는 팔던 찻그릇을 가지고 옥의 창 사이로 날아서 나갔다.    (6) 취미   우리의 선조차인들은 손수 물을 길어 삼매경(三昧境)에서 차 끓이는 일을 즐기었다. 불길을 맞추고 물을 다루고 물 끓는 자연의 소리를 듣고, 어린 차싹의 생김새를 보고, 차 끓을 때나 찻잔에 어리는 차연(茶煙:차이내)을 보는 것이 좋아 이를 시로 표현하곤 했다.   또 차맷돌, 차 끓이는 쇠주전자, 찻잔 등의 다구를 선비들 간에 선물로 주고받으며 그 멋을 예찬하고 감상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이규보는 남인(南人)이 보낸 쇠주전자에 삼매의 솜씨로 손수 차를 끓이며 몹시 즐거워하였다. 고려 말의 충신 이색(李穡)은 이우량(李友諒)으로부터 선물받은 한쌍의 찻종에 대해「찻종을 보니 아담하여 나쁜 기운이 없네[茶種照目便無邪]라고 하여 찻잔을 단순한 기물로만 보지 않고 철학적 심미안(審美眼)으로 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시습도「다구(茶具)」를 선물받고 고마움을 시로 썼다. 또 차를 마시는 곳에는 학, 매화, 난초, 소나무, 대나무, 너럭바위, 물 등이 있어 그 속에서 즐거움을 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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