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 일 ①
茶일(찻일)
제1절 차 끓이는 일
1. 물 끓이기
(1) 불길 맞추기
조선 초엽의 김수동(金壽童)은 차를 잘 달이기 위해 불길 맞추기를 저울 눈 한 치 한 푼 다투듯이 한다고 했고, 실학자 이덕무(李德懋)가 쓴『사소절(士小節)』의『어린이가 지킬 일[童規]』에는「어버이를 섬기는 사람은 약을 달이고 차를 끓이는데 그 물과 불의 정도를 잘 알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옛날에는 나무나 숯을 사용해서 불을 피웠고, 또 주로 차를 끓는 물에 넣어 끓여서 마셨으므로 불길을 잘 다스리는 일은 매우 중요하였다.
차 끓이기 좋은 불은 활화(活火) 즉, 불꽃이 있는 산 불(꽃불)을 쓴다고 했다. 또 문무화(文武火)가 고르게 일어야 된다고 하였는데 문화(文火)는 약한 불이고 무화(武火)는 센 불로서, 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화력이 고루 다스려져 생기있는 불을 말한다.
다산은 솔방울을 주워서 탄으로 만들어 차를 끓이기도 했는데, 좋은 숯으로는 백탄(白炭)을 썼다. 오늘날 실내에서 숯을 사용할 때는 특히 환기에 유의해야 하며 가공숯이나 가공탄을 쓰는 것도 좋다. 나무로는 소나무 가지나 대나무를 살라 차를 달인 경우를 볼 수 있다. 나무는 진이 없고 잘 마른 것이어야 하며, 연기의 내음이 차에 배지 않게 유의했다. 오늘날에는 전기, 가스, 알콜 등을 연료로 쓰는데, 생기있는 불꽃으로 열효율이 최대가 되도록 겉불꽃 부분이 탕관에 닿도록 끓인다. 속불꽃은 탄소 알갱이가 가열되어 보기에는 밝으나 산소공급이 잘 되는 겉불꽃보다 온도가 낮다. 가스를 사용 할 때 불을 세게 하면 물이 금방 줄어들고 질탕관을 놓았을 때 터질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2)물이 끓는 단계
조선 초엽의 문신이며 음양학(陰陽學)에 밝았던 차인 정희량(鄭希良)은 아래의 시에서 찻물이 끓는 단계를 5단계로 구분하였다.
밤에 앉아 차를 달임
밤은 얼마나 깊었나 하늘엔 눈이 오려 하고
맑은 등 밝힌 고옥(古屋)은 추워 잠이 오질 않네
상머리의 이끼를 말끔이 닦아내고
푸른 바다 같은 차가운 샘물을 쏟아 부어
화력의 강약을 고르게 다시리니
벽 위에 불빛이 어리며 김이 나는구나
끓는 소리 쉬쉬하니 골짜기에서 울리는 솔바람 소리 같고(①애벌 끓음: 끓기 시작함 약 70˚C)
세차게 끓어 오르니 급하게 흐르는 시냇물 소리 같구나(②두벌 끓음: 기포생기며 끓어오름 80~90˚C)
우뢰와 번개가 끊임없이 일어나듯 하고(③한창 끓음 100˚C)
수레를 급하게 몰아 험하고 꼬불꼬불한 고갯마루를 넘듯 하더니(④불길 멈추고 잦은 불로 뜸들임)
다시 구름이 걷히고 바람이 잠들고 나서야 파도가 일지 않고 고요히 움직이도다(⑤불이 꺼짐)
커다란 표주박으로 한 잔 뜨니 빙설(氷雪)같은 빛이 나고
간담이 밝게 탁 트이어 신선과 통하네
...........
그는 찻물이 끓는 것을 3단계로, 뜸들이는 것을 2단계로 구분하였는데 연료가 다른 오늘날 물을 끓일 때도 거의 같이 적용된다. 초의는『다신전』에서 위의 ③한창 끓음의 단계를 순숙(純熟)이라 했으며 그 이전은 맹탕이라 했다. 이렇게 잘 끓인 물을 고려인들은 익은 물[熟水:숙수]이라 했다. 너무 지나치게 끓여 줄어든 물을 쇤물[老水]이라 하는데 이것도 차 끓일 때는 좋지 않고 충분히 끓지 않은 어린물[嫩水:눈수]도 또한 좋지 않다.
가루차를 점다하는 물은 순숙단계와 뜸들이는 시간이 짦은 물이 좋으며 잎차를 우릴 때는 물이 충분히 끓어야 차맛이 좋다. 특히 수돗물은 10분 정도 끓이면 염소를 포함한 발암물질과 냄새 등이 달아나 버린다. 끓기 시작하면 뚜껑을 조금 열어 두는 것이 좋다.
(3) 물이 끓는 소리와 모양
차를 끓여 마실 때는 대개 고요한 곳에서 마음이 한적할 때이므로 물이 끓는 소리를 듣게 된다. 우리의 선조들은 찻물이 끓는 자연의 소리를 즐겨 들었다. 흔히 송풍(松風:소나무에 바람스치는 소리)에 비유하였고, 돌솥의 지렁이 소리(임춘), 파리 소리(서거정), 구리병에 삭삭 소나기 오는 소리(김극기), 소나무 가지 끝에 비 날리는 소리(이색), 철병에서 목메인 소리나다가 생황(笙滉:부는 악기)소리(이규보), 찻병에서 지렁이 우는 소리(이숭인), 봄강물의 음향(서거정), 경쇠(옥이나 돌로 만든 아악기)소리(김시습), 서릿바람으로 잣나무가 생황을 부는 소리(이목), 대숲의 바람소리(심동구), 산골물 소리(홍만선), 대퉁소 소리와 바람에 소나무 물결치는 소리(초의), 소소(簫簫,김가진) 등으로 표현하였다. 실제로 질탕관이나 돌솥에서는 바람 소리가 난다.
물이 끓어 오르는 기포를 보고 흔히 게눈, 물고기 비늘, 놀란 물결 등으로 표현했다.
오늘날에도 찻자리에서 물이 끓기를 기다리면서 물김을 바라보며 자연의 소리를 귀담아 듣고 있노라면, 호숫가의 소나무 아랭에 앉아 있는 것과 같은 더욱 평정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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